BBC 영상 화제 되자 일부 영어권 언론에서 ‘당황한 유모’라고 표현
아시아 여성에 대한 성적·인종적 고정관념이라는 지적 이어져
영국 <비비시>(BBC) 월드 뉴스의 로버트 켈리 교수 인터뷰 화면. 유튜브 영상 갈무리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대해 인터뷰를 하던 중 아이들이 화면에 등장한 귀여운 ‘방송 사고’가 전 세계적으로 화제를 낳은 가운데, 일부 매체가 이 사고를 수습한(?) 교수의 아내를 유모로 오해한 것은 아시아 여성에 대한 전형적인 고정관념을 보여주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10일 로버트 켈리 부산대학교 교수(정외과)와 <비비시> 월드 뉴스의 인터뷰 영상에 등장했던 한국인 아내를 유모로 오해한 것은 전형적으로 성적·인종적 편견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비비시>등 외신이 11일(현지시각) 전했다. <비비시> 방송은 “한국에서는 맞벌이 부모일 경우 유모를 고용하는 경우가 있지만, 영상에 등장하는 여성을 아내가 아닌 유모로 보는 것은 아시아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앞서 켈리 교수는 10일 자신의 집에서 <비비시> 월드 뉴스와 화상 연결을 통해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에 대해 인터뷰했다. 인터뷰 도중 켈리의 자녀 두 명이 방으로 들어왔고, 이를 알아챈 켈리 교수의 아내가 뒤늦게 아이들을 방에서 데려가는 모습이 그대로 생방송으로 중계됐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관련 기사에서 영상에 등장하는 여성을 ‘당황한 유모’라고 표현했다가 이후 ‘당황한 아내’라는 표현으로 고쳤고, 영국의 타블로이드 신문 역시 켈리의 아내를 ‘겁에 질린 유모’라고 표현했다.
이후 아시아 여성을 유모로 ‘추측’해 표현한 것은 전형적인 고정관념이라는 지적이 이어졌다. 한 트위터 이용자는 ‘인종차별을 반대한다’는 해시태그와 함께 “(영상의) 여성은 교수의 아내다. 유모라는 추측 좀 하지 말라”라는 글을 올렸다. 다른 누리꾼 역시 “<비비시> 영상은 좋지만, 백인 남성과 있는 아시아 여성을 당연하게 유모로 생각하지 말아라. 정말 미묘한 인종차별이다”라고 지적했다. 블로그 ‘앵그리 아시안 맨’의 블로거 필 유는 미국 <로스앤젤레스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아시아 여성이 복종하고, 수동적이며 서비스직을 잘 수행한다는 고정관념이 있다”며 “사람들은 이 영상을 본 뒤에도 비슷한 고정관념을 만들어냈다”고 지적했다.
<비비시> 뉴스의 영상은 유튜브에서 800만건의 조회수를 기록하는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급속히 퍼지며 화제를 낳았다. 미국에 사는 켈리의 모친 엘렌 켈리는 영국 <데일리 메일>과의 인터뷰에서 “남편과 함께 아이들과 스카이프로 종종 화상통화를 하곤 했다”며 “아이들이 아마도 컴퓨터에서 나오는 목소리를 듣고 우리랑 통화를 한다고 생각한 것 같다”고 했다.
아이들의 귀여운 영상으로만 회자되는 켈리 교수의 당시 인터뷰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한국에서 10년을 살았는데 오늘이 최고의 날인 것 같습니다. 한국인들이 이뤄낸 방식에 매우 감명 받았습니다. 탄핵 절차 전체를 끝까지 마무리한 민주주의 국가는 거의 없습니다. 한국인들은 폭력도, 큰 혼란도 없이 이것을 해냈습니다. 헌법 절차를 준수했고, (촛불시위 등의 과정에서) 아무도 숨진 이가 없었고, 쿠테타도 없었습니다. ‘아랍의 봄’과는 달랐습니다. 민주주의의 대단한 성과입니다. 민주주의의 승리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어떤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정치) 스캔들은 일어납니다. 문제는 민주주의가 그 스캔들에 어떻게 반응하느냐는 것입니다.”
(이어 비비시 앵커가 화제를 바꿔 북한 문제에 대해 켈리 교수에게 질문하고, 이때 딸아이가 춤추며 들어오기 시작한다.)
답변을 시작하는 켈리 교수는 말레이시아에서 일어난 김정남 피살을 언급하며 “이번에 북한의 행동 방식에 매우 놀랐다”고 운을 뗐으나, 아이들의 방해에 연신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반복했다. 켈리 교수는 ‘한국’(South Korea)를 ‘북한’(North Korea)으로 잘못 말하는 등 한동안 당황한 모습을 보였으나, 무사히 인터뷰를 마쳤다.
황금비 기자 withb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