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3일 백악관 루스벨트 룸에서 열린 건강보험법안 관련 회의에서 참석자의 발언을 심각한 표정으로 듣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미국 백악관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2005년도 소득 및 납세 내역 요약본을 전격적으로 공개했다. 그동안 납세 내역 공개를 꺼리던 트럼프 대통령이 방송의 공개 예고를 앞두고 마지못해 내놓는 모양새지만, 이 과정에서 풀리지 않는 의문이 제기된다.
백악관이 14일 공개한 자료를 보면, 트럼프 대통령의 2005년 연소득은 1억5300만달러였다. 세부적으로는 부동산 로열티 6700만달러, 기업이익 4200만달러, 자본소득 3200만달러, 과세이자소득 900만달러, 연봉 99만8599달러 등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해 연방세금으로 3800만달러를 납부해, 실효세율은 대략 25%에 이른다. 백악관 자료에는 없지만 트럼프는 당시 ‘1억달러가량의 손실을 봤다’고 주장해, 애초 530만달러의 세금만 부과받았다. 하지만 부자들의 조세회피 방지를 목적으로 만들어놓은 ‘최저한세’(사업소득이 있는 납세자는 공제·감면과 상관없이 납부해야 하는 최소한의 세금) 제도 때문에 3120만달러의 세금을 추가로 내야 했다.
백악관이 ‘뜬금없이’ 트럼프 대통령의 12년 전 납세 내역을 공개한 것은 <엠에스엔비시>(MSNBC) 방송의 앵커 레이철 매도가 올린 트위터 때문이다. 매도는 트럼프의 2005년 납세자료 입수 사실을 알리며, 이날 밤 9시 자신이 진행하는 쇼에서 세부 내용을 밝히겠다고 전했다. 그러자 백악관 쪽이 “납세자료를 훔쳐 공개하는 건 불법”이라고 항의하면서도, 먼저 납세자료를 공개했다. 대선 기간 동안 온갖 비판에도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납세자료를 공개하지 않던 그였기에 매우 이례적으로 받아들여진다.
14일 미국 (MSNBC) 방송의 앵커인 레 이철 매도가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도널드 트럼프 미 국 대통령의 2005년 납세자료를 입수한 사실을 알리 며 이날 밤 9시 자신의 프로그램에서 세부 내용을 밝 히겠다는 글을 올렸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백악관은 방송 직전 트럼프의 2005년 납세자료를 공개했다. 레이철 매도 트위터 갈무리
이보다 앞서 방송국에 트럼프 납세자료를 먼저 제공한 인물은 전직 <뉴욕 타임스> 기자인 데이비드 존스턴으로, 연방국세청을 오래 출입한 인물이다. 그는 이날 ‘레이철 매도 쇼’에 나와 자신의 우체통에서 납세내역 자료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존스턴은 누가 보냈는지는 모른다며 “트럼프가 보냈을 가능성도 있다. 트럼프는 오랫동안 본인이 스스로 자료를 누설시킨 역사가 있다”고 추측했다. 일종의 ‘자작극’일 수 있다는 얘기다.
존스턴에게 보내진 납세자료와 백악관이 공개한 납세자료는 똑같이 2쪽짜리 요약본에 불과하다. 트럼프가 그동안 납세자료 공개를 꺼린 이유로 추정됐던 ‘러시아와의 사업 유착 의혹’을 보여주는 단서는 없다. 오히려 납세내역 공개 직후, 트럼프의 아들인 트럼프 주니어가 “트럼프가 (약) 4000만달러나 세금을 냈다는 걸 증명해줘 고맙다”는 트위트를 올릴 정도다. 결과적으로 이 납세자료 공개로 트럼프가 입은 정치적 손실은 거의 없다.
하지만 트럼프 이너서클 가운데 누군가가 트럼프를 공격할 목적으로 고의로 흘렸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너서클 밖에선 트럼프의 과세 내역을 아는 게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잭 펫캐너스 민주당 전국위원회 수석고문은 이날 성명을 통해 “그들(백악관)이 정보 일부를 공개할 수 있다면, 전부 공개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라며 납세내역을 추가로 더 공개하라고 압박했다. 펫캐너스는 “(백악관이) 트럼프 납세내역을 공개하지 않는 유일한 이유는 러시아 신흥부자와 크렘린(크레믈)과의 금융 커넥션 등과 같은 것들을 감추기 위해서”라고 공격했다.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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