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8일 워싱턴 환경청 청사에서 광부들에게 둘러싸여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환경정책들을 원점으로 돌리는 에너지 독립 행정명령에 서명한 뒤 라이런 진크 내무장관을 쳐다보고 있다. 워싱턴/UPI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8일(현지시각) 버락 오바마 전 행정부가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제정한 환경정책을 원점으로 돌리는 행정명령을 발동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일자리를 죽이는 규제”와 “석탄과의 전쟁”을 종식시킨다며, 오바마 시대의 환경정책들을 취소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트럼프가 서명한 ‘에너지 독립 행정명령’은 오바마 전 대통령 등 전임 대통령들이 입법한 6개 이상의 환경규제 대책을 중단하고 화석연료의 사용을 권장하는 내용을 담았다.
재계는 트럼프의 조처를 환영했으나, 환경운동 단체 등은 이 조처가 심각한 환경 재앙을 부를 것이라고 비난했다. 트럼프는 이날 석탄 광부들에 둘러싸인 채 행정명령에 서명하고는 “나의 행정부는 석탄과의 전쟁을 끝낸다”며 “오늘 행정 조처로 나는 미국 에너지에 대한 규제를 제거하고, 정부의 간섭을 되돌리고, 일자리를 죽이는 규제를 취소하는 역사적인 조처들을 취했다”고 자평했다.
트럼프는 지난 대선 기간 중에 기후변화는 ‘중국이 만들어낸 사기’라며, 기후변화를 막으려고 2015년 12월에 합의된 파리기후변화협정의 탈퇴를 공약했다.
트럼프의 행정명령으로 취소된 환경정책 중에는 파리기후협정에 따라 미국의 의무를 지키기 위해 미국의 주 정부들에게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도록 요구하는 ‘청정발전계획’ 등이 포함됐다. 청정발전계획은 공화당이 집권한 주 정부에서는 반대가 심해, 그 취소를 요구하는 소송이 제기됐다. 대법원은 지난해 일시적으로 그 계획을 중단하는 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또 에너지 독립 행정명령에는 환경청의 예산 3분의 1을 삭감하는 트럼프의 계획을 뒷받침하기 위해 환경청의 규제를 줄이는 조처도 포함됐다. 트럼프는 이날 서명을 환경청에서 했다. 트럼프는 환경청장에 기후변화에 회의적인 스콧 프루이트를 임명한 바 있다.
행정명령에는 석유 및 석탄산업의 메탄가스 방출량 기준도 완화하는 조처도 포함됐다. 연방정부 소유의 땅을 임대해 석탄을 개발해 파는 재량도 확장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청정발전계획의 철폐가 시민들의 일자리를 되찾고, 수입 연료에 대한 미국의 의존을 감소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행정명령에는 대통령이 “미국에서 에너지 생산을 증진시킬 것”이라고 규정했다. 트럼프는 “전임 행정부는 노동자들의 가치를 폄하하는 정책을 펼쳤다”며 “우리는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면서도 환경을 보호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기후변화를 부정하는 트럼프의 반환경 정책을 지지하는 쪽은 트럼프의 정책들이 석유와 가스 산업에서 일자리를 만들어낼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반대 쪽은 이 행정명령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일자리를 탄광 등에서가 아니라 변호사 등의 일자리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트럼프의 행정명령으로 파리기후변화협정에서 미국의 탈퇴는 가시화됐다. 트럼프는 줄곧 파리기후변화협정이 미국에 불평등하다고 주장해왔다. 파리협정은 전세계적인 기온 상승을 막기 위해, 각국 정부들에게 화석연료 사용과 이산화탄소 방출을 억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기후변화는 중국에 의해 조장됐고, 중국을 위한 것이라는 주장을 펴던 트럼프는 대통령 당선 뒤인 지난해 말에는 인간의 활동과 기후변화에는 ‘일정의 연관성’이 있다고 인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날 행정명령으로 미국의 파리협정 탈퇴는 다시 가능성이 높아졌다. 유럽연합과 인도, 중국 등은 미국이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파리협정을 고수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환경단체 쪽에서는 트럼프의 반환경정책에 맞서 투쟁할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미국의 억만장자이자 환경론자인 톰 스테이어는 “이런 조처들은 미국의 가치에 대한 공격이며 모든 미국인들의 건강과 안전, 번영을 위험에 처하게 한다”고 항의했다.
자연자원수호위원회의 데이비드 도니거는 “이것은 기후행동계획의 자리에 기후파괴계획을 놓은 것이다”며 법정에서 대통령과 싸울 것이라고 다짐했다. ‘지구의 정의’의 회장인 트립 반 노펜은 법정 안팎에서 트럼프의 행정명령에 맞서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 명령은 법과 과학적 현실을 무시한다”고 분노했다.
정의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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