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언 하산 미나지가 29일 백악관출입기자단 만찬행사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풍자하며 웃고 있다. 워싱턴/EPA 연합뉴스
백악관 출입기자단의 연례 만찬행사가 36년 만에 처음으로 주빈인 대통령이 불참한 가운데 29일 열렸다. 때로는 청중에게 유머를 선사하고, 때로는 스스로 유머의 대상이 된 대통령이 불참해 분위기는 썰렁했지만, 이제까지와는 달리 언론 자유의 의미를 되새기는 시간이었다고 미국 언론들이 전했다.
1921년 시작한 이 행사에 대통령이 불참한 것은 1981년 총격을 받아 치료중이어서 오지 못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이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처음이다. 백악관 참모들도 불참했다.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국무장관을 한 매들린 올브라이트 정도가 눈에 띄는 참석자였다.
할리우드 유명 스타들도 얼굴을 내밀어온 이 행사는 단순한 기자단 만찬이라기보다는 워싱턴의 최대 사교행사로 자리매김해왔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참석한 지난해에는 윌 스미스와 엠마 왓슨 등도 왔다. 미국 대통령에게 이 행사는 기자들과의 친교를 다지는 것과 동시에 여유와 유머 감각을 뽐내는 기회다. 지난해 오바마는 “내년에는 다른 사람이 이 자리에 설 것이다. 그녀(she)가 누구일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해 폭소를 자아냈다. 힐러리 클린턴과 민주당 대선 후보 자리를 다툰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에 대해서는 “민주당의 빛나는 새 얼굴”이라고 했다가, 그의 사회주의적 성향을 빗대 “동무(comrade)”라고 불러 또 폭소를 유발했다.
그러나 힐튼호텔에서 열린 이번 행사에는 트럼프 대통령은 물론 할리우드 스타들의 보이콧 탓에 썰렁한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 그들의 빈자리를 채운 것은 <워싱턴포스트>에서 워터게이트 사건을 터뜨린 보브 우드워드와 칼 번스틴이다. 우드워드는 연단에 올라 “대통령, 미디어는 가짜 뉴스가 아니오”라고 일갈했다. 또 워터게이트 보도 과정을 설명하며 “공격적 보도가 흔히 필요하다”고 했다. 번스틴은 트럼프 대통령이 언론을 “시민의 적”이라고 한 것에 대해 “비합리적인 정부의 비밀주의야말로 적”, “거짓말이 비밀주의와 결합할 때, 우리 앞에는 아주 좋은 로드맵이 있다”고 맞받았다. 백악관출입기자협회의 제프 메이슨 회장은 “올해는 할리우드 스타들의 레드카펫이 아니라 (언론 자유를 천명한) 수정헌법 제1조와 민주주의가 행사의 초점”이라고 <에이피>(AP) 통신에 말했다.
마냥 딱딱한 행사만은 아니었다. 사회를 본 코미디언 하산 미나지는 트럼프의 러시아와의 수상한 관계를 암시하며 “우리 지도자는 지금 여기에 없다. 아주 먼 모스크바에 산다”고 말했다. 그는 또 트럼프가 술을 안 마신다면서도 어떻게 새벽 3시에 트위터 글을 보낼 수 있는지, 자신은 그 비밀을 알고 있다고 했다. 바로 그 시각이 러시아에서는 오전 10시로 근무시간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트럼프의 딸 이방카가 행사에 왔다면 “왜 그런 사람(트럼프)를 지지하냐”며 “우리 모두가 궁금한 질문을 했을 것”이라고 했다. 누군가 자기에게 “하산, 네 아빠가 미국 대통령이 되면 어떠냐”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할 것이라고 했다. “좋겠지… 우리 아빠? 나지미 미나지? 입고 다닌 속옷을 코스트코에서 환불받으려고 한 사람? 안 돼!”
트럼프의 호전적 성향도 풍자했다. 미나지는 “그가 골프를 칠 때마다 헤드라인은 ‘트럼프가 골프를 친다. 재앙은 지연됐다’고 뽑아야 한다”거나 “가능한 한 길게 트럼프의 주의를 산만하게 만들수록 북한과의 전쟁도 뒤로 미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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