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국가(IS) 수사를 담당한 미국 연방수사국(FBI) 요원이 시리아에 건너가 조사 대상인 아이에스 조직원과 결혼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한계를 뛰어넘은 로맨스로 치부하기에는 1급비밀을 다뤄온 연방수사국 요원의 일탈 수준이 아주 심각하다.
<시엔엔>(CNN)은 연방수사국 요원이던 다니엘라 그린(38)이 2014년 시리아에 잠입해 아이에스의 인터넷 선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온 데니스 쿠스페르트(42)와 결혼했던 것으로 밝혀졌다고 2일 보도했다. 이 사건은 그동안 수사와 재판 내용이 비공개 대상이어서 알려지지 않았다.
시엔엔이 입수한 재판 기록을 보면, 체코슬로바키아 태생으로 독일에서도 어린 시절을 보낸 그린은 독일어 실력을 인정받아 2011년 연방수사국에 취업했다. 앞서 미군과 결혼해 미국 시민권을 얻었고, 역사학 석사학위를 갖고 있다. 그는 2014년 연방수사국 디트로이트지부에 배속돼 재판기록에 ‘A’라고 표기된 테러리스트를 담당하게 됐다.
시엔엔은 ‘A’는 가나 출신 아버지와 독일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독일에서 래퍼로 활동한 데니스 쿠스페르트라고 밝혔다. 쿠스페르트는 2010년부터 이슬람 과격주의에 경도돼 노래 실력을 바탕으로 인터넷 선전전에 적극 나섰다. 이듬해에는 미군이 무슬림 여성을 성폭행하는 내용의 가짜 동영상을 페이스북에 올렸고, 이를 보고 격분한 다른 무슬림이 독일 프랑크푸르트공항에서 미군에게 총격을 가해 2명을 사살했다. 이 사건으로 미국과 독일 정부의 감시 대상에 오른 쿠스페르트는 2012년 이집트와 리비아를 거쳐 이듬해 시리아로 들어갔다. 그에게는 ‘아이에스의 유명 치어리더’라는 별명이 붙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목을 치겠다고 위협하는 내용의 동영상에 등장하고, 절단된 머리를 들고 나오기도 했다. 오사마 빈라덴을 찬양하는 노래도 불렀다. 래퍼 때 데소 도그라는 이름으로 활동한 그는 아이에스 전사가 된 뒤에는 아부 탈라 알알마니라는 이름을 썼다.
쿠페르트는 스타급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래퍼로서 명성이 있었다. 2006년에는 미국 유명 래퍼 디엠엑스(DMX)와 함께 공연하기도 했다. 그러나 2010년 자동차 사고로 죽을 뻔한 뒤 이슬람에 귀의했다고 한다. 그린이 그에 대한 조사를 담당하던 2014년 4월에 인터넷에 올린 동영상에서 그는 아이에스 지도자인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에게 충성을 맹세하면서 “아이에스는 누구도 멈출 수 없는 국가이며, 워싱턴에 이를 때까지 국가를 건설할 것이다. 오바마!”라고 외쳤다. 쿠스페르트는 주로 독일어로 아이에스의 활동을 선전하는 인터넷 콘텐츠를 올렸다. 2015년에는 미국 국방부가 그를 노린 공습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가, 나중에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고 번복하는 등,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에서도 주요 타깃이 된 인물이다.
그린은 조사 과정에서 쿠스페르트의 인터넷전화 계정 등을 파악했다. 그러다가 “개인적으로” 연락이 닿고 사랑에 빠진 것으로 보인다. 그린은 미군 남편과 여전히 결혼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2014년 6월23일 시리아로 떠난다. 연방수사국에 제출한 외국여행 계획서에는 “휴가”를 간다고 썼고, 주변에는 독일 뮌헨에 사는 가족을 만나겠다고 했다. 그러나 터키 이스탄불행 비행기에 탔고, 시리아 국경지대에서 쿠스페르트가 보낸 사람과 접촉해 국경을 넘었다. 곧 쿠스페르트와 결혼했다. 그러나 곧 환멸에 빠진 것으로 보인다. 현지에서 미국의 지인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상황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모르겠다”, “완전히 엉망이 됐다”고 밝혔다. 다른 이메일에서는 “여기서 얼마나 버틸지 모르겠다”, “그들이 내가 돌아간다면 오랫동안 감옥에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지는 모르겠다. 조만간 돌아가겠다”고 했다. 그린이 시리아에 있던 시기로 추정되는 그해 7월에 인터넷에 오른 동영상에는 쿠스페르트가 시리아 홈스에서 신발로 주검을 때리는 장면이 나온다.
한 달 만에 시리아에서 귀국한 그린은 곧 체포됐고 조사에 협조했다. 징역 2년을 선고받고 만기 복역한 뒤 지난해 여름에 석방됐다. 미국 검찰은 “공중의 신뢰를 저버리고, 비밀 취급을 허가한 이들에 대한 신뢰를 저버렸고, 함께 일한 동료들의 신뢰를 저버렸고, 국가의 안전을 위험에 빠트렸다”며 그린을 비난했지만, 조사에 협조한 점은 참작 사유로 제시했다.
연방수사국은 “이번 사건으로 유발된 보안 취약점을 파악하고 해결하는 여러 조처를 취했다”고 시엔엔에 설명했다. 그러나 시엔엔은 1급비밀을 다뤄온 그가 시리아에서 미국의 대테러전과 관련해 얼마나 많은 내용을 아이에스에 누설했는지, 이런 인물이 어떻게 엄격한 신원조회를 통과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린은 현재 호텔 웨이트리스로 일한다고 한다.
이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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