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취임 이래 백악관과 마라라고리조트 등 ‘안방’에서만 외국 손님들을 맞아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첫 해외 순방지로 중동과 유럽을 택했다.
백악관은 4일(현지시각) 트럼프가 19일 사우디아라비아(리야드)를 시작으로 이스라엘(예루살렘)-이탈리아(로마)-벨기에(브뤼셀)-이탈리아(시칠리아)를 순방한다고 밝혔다. 사우디와 예루살렘, 로마를 한꺼번에 방문한다는 점에서 이슬람·유대교·가톨릭의 중심지를 방문하는 ‘성지 순례’에 나서는 셈이다. 트럼프는 “관용이 평화의 주춧돌”이라며 “사우디, 이스라엘, 그리고 우리 추기경들이 매우 사랑하는 로마에 간다”고 말했다.
미국 언론들은 트럼프가 이번 순방에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해법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트럼프는 2월에 미국을 방문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만났고, 최근 마흐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도 만났다. 사우디에서 다른 아랍 국가 정상들도 함께 만날 예정인데, 이란에 적대적인 아랍 정상들과의 연대 강화를 위한 행보로 분석된다. 예수 탄생지인 서안지구 베들레헴에서 아바스 수반을 다시 만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슬람국가(IS) 퇴치전도 의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로마에서 만나는 프란치스코 교황과의 ‘관계 회복’ 여부도 관심거리다. 교황은 지난해 2월 대선 후보 트럼프의 멕시코 장벽 건설 주장에 대해 “다리가 아니라 벽을 세울 생각만 하는 사람은 기독교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트럼프는 페이스북을 통해 “이슬람국가가 궁극적 전리품으로 여기는 바티칸을 공격하면, 교황은 ‘트럼프가 대통령이라면 이런 일이 안 일어났을 텐데…’ 라며 기도할 것”이라고 응수했다.
트럼프는 이후 브뤼셀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에 참석하고, 26일에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가 열리는 시칠리아로 간다. 중동 평화 문제를 다룬 데 이어 유럽 동맹들과의 관계를 다지는 일정이다.
<뉴욕타임스>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 해외 순방 패턴에 여러 차이가 있다고 분석했다. 우선 트럼프는 국경을 맞댄 캐나다와 멕시코를 먼저 방문하는 역대 대통령들의 상례를 깼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 지난달 백악관을 방문하기는 했으나, 트럼프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개정을 두고 가장 가까운 두 이웃과 냉랭한 관계를 보이고 있다. 또 오바마가 취임 초 이맘때 3번의 순방 일정으로 9개국을 방문한 것에 비출 때 트럼프는 해외 순방에 소극적이다.
오바마의 2009년 6월 중동 방문 때와 달리 이스라엘에 들르는 것도 다르다. 당시 오바마는 이집트 카이로대 연설에서 이슬람 세계와의 “새로운 관계”를 추구하겠다고 선언해 이슬람권의 환호를 받았다. 그러나 트럼프는 아랍 민중에게 직접 호소하는 대신 이스라엘과 아랍 양쪽의 정상들을 설득하고 압박하는 편한 길을 택했다고 이 신문은 평가했다.
이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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