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이 10일 백악관 집무실에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을 만나 얘기를 나누고 있다. 워싱턴/타스 연합뉴스
지난 주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뉴저지주 베드민스터 골프장에서 골프를 치며 러시아 스캔들에 관한 제임스 코미 연방수사국(FBI) 국장의 의회 증언이 “이상하다”며 불평했다. 워싱턴 정가를 발칵 뒤집은 코미 해임 사태의 시작이었다.
8일 백악관으로 복귀한 트럼프는 즉각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라인스 프리버스 비서실장 등 백악관 참모들을 소집해, 자신이 코미에 대해 조처를 취할 준비가 됐다고 밝혔다. 그는 곧 제프 세션스 법무장관을 호출했다. 세션스 장관은 연방수사국의 러시아 스캔들 수사를 감독하는 로드 로즌스타인 부장관을 대동했다. 연방수사국에 대한 불만으로 대화가 모여지자, 두 사람은 자세히 설명했다. 트럼프는 코미의 문제점을 설명하는 문건을 작성하라고 지시했다. 두 사람은 즉각 그 명령을 실행했다.
다음날인 9일 트럼프는 코미 해임 발표를 지시했고, 두 시간 만에 발표가 나왔다. 세라 샌더스 백악관 부대변인은 코미가 힐러리 클린턴이 국무장관 재임 동안 개인 이메일을 사용한 사건 수사를 감독하면서 “끔찍한 짓들”을 해서 연방수사국의 도덕성을 해치고 대중의 신뢰를 갉아먹었다고 발표했다. 백악관에서는 트럼프가 코미를 해임한 것은 로즌스타인의 권고에 따른 것일 뿐이라는 얘기도 흘러나왔다. 그러자 이에 분개한 로즌스타인은 사임하겠다고 협박했다.
10일치 <워싱턴 포스트>가 전한 코미 해임 전후의 백악관 풍경이다. 이 신문과 <뉴욕 타임스>는 코미가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트럼프 캠프와 러시아의 내통 의혹을 밝히려는 러시아 스캔들 수사 관련 인력과 예산 증강을 요구하고, 이에 맞춰 의회가 관련 조사의 강도를 높이자 트럼프가 코미를 해임했다고 보도했다.
결정적 계기는 코미가 지난주 법무부에 러시아의 미 대선 개입에 대한 수사를 가속화하기 위해 검사 등 수사 인력 보강을 요청한 것이었다. 이런 요구는 로즌스타인 부장관에게 전해졌다. 세션스 법무장관은 취임하면서 자신도 이 사건의 당사자라서 수사의 지휘감독권을 부장관에게 이양한 상태였다. 로즌스타인은 트럼프가 요구한 문건에서 이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는 취임할 때부터 코미가 클린턴의 개인 이메일 사용이나 러시아 스캔들 수사 정보 유출보다는 러시아의 대선 개입과 트럼프 쪽 인사들의 러시아 커넥션에 수사를 집중한다고 불평해왔다. 코미의 이런 요구는 트럼프에게 격분을 넘어 심각한 위기 의식을 불어넣었다.
러시아 스캔들을 조사하는 상원 정보위가 돈세탁과 테러 자금을 추적하는 재무부의 ‘금융범죄단속네트워크’에 압박을 가하기 시작한 것도 트럼프를 긴장하게 만들고 있다. 코미를 해임한 9일 상원 정보위의 리처드 버 위원장과 마크 버너 의원은 금융범죄단속네트워크에 러시아 수사와 관련된 트럼프 및 그의 측근의 금융정보를 요청했다. 두 사람은 재무부가 이 정보를 제공할 때까지 트럼프가 새로 지명한 이 기구의 책임자 인준을 하지 않겠다고 압박했다. 금융범죄단속네트워크는 전 세계의 자금 이체 정보를 수집·축적하고 있는 기관이다. 이 기관이 수사에 협조하면, 트럼프와 측근들의 자금 거래는 낱낱이 드러난다. 또 상원 정보위는 코미를 비공개 청문회에 소환해, 그가 수사 기밀사항을 털어놓을 수 있는 환경도 조성했다.
코미 해임은 오히려 의회의 러시아 스캔들 조사를 더 가속화하고 있다. 상원 정보위는 10일 이 사건으로 낙마한 마이클 플린 전 국가안보보좌관에 대한 자료 제출 명령장을 발부했다. 정보위는 앞서 그에게 러시아와 관련된 금융거래 내용과 전화·이메일 기록, 회의 기록을 제출하라고 요구했으나, 그가 거부하자 제출을 강제하는 명령장을 발부했다. 상원 정보위가 자료 제출 명령장을 발부한 것은 1970년대 이후에 처음이다.
트럼프는 코미 해임 다음날인 10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을 만났다. 라브로프는 트럼프가 취임 이후 만난 러시아 인사 중 최고위급이다. 트럼프 쪽 인사와 내통한 의혹을 받는 세르게이 키슬랴크 주미 러시아대사도 동석했다. 백악관은 이 회동에 대한 미국 언론의 취재를 허용하지 않았고, 키슬랴크 대사의 참석도 보도자료에서 언급하지 않았다.
정의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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