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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중남미

미 외교계 거두 브레진스키 사망…’5·18 광주 민주화운동’ 깊숙이 개입

등록 2017-05-27 15:45수정 2017-05-28 10:34

지미 카터 외교브레인…폴란드 출생 뒤 소련 침공으로 캐나다 정착
5·18 때 백악관 ‘필요한 최소한의 무력 사용’ 결정 회의에 참여
미국 패권 유지하기 위한 중국의 지정학적 지배 인정
1970년대 지미 카터 미국 행정부의 외교 브레인이었으며, 이후에도 미국 외교안보 정책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던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전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이 26일(현지시각) 사망했다. 향년 89살.

브레진스키의 딸 미카 브레진스키는 자신이 진행하는 <엠에스엔비시>(MSNBC) 프로그램 ‘모닝 조’에서 “가장 영감을 많이 주고 딸에게 더없이 헌신적이었던 아버지”였다며, 브레진스키의 사망 소식을 전했다.

1928년 폴란드 귀족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프랑스와 독일, 캐나다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브레진스키 가족이 캐나다에 도착한 뒤 6년 만에 소련이 폴란드를 점령했고 고향을 잃은 이들은 캐나다에 정착했다. 이후 그는 몬트리올 소재 맥길대를 졸업하고 미국 하버드대에서 정치학 박사를 학위를 받았다.

폴란드가 독일과 소련에 의해 분할 점령됨으로써 돌아갈 조국을 잃었던 브레진스키는 자신의 이런 성장 배경 탓에 옛 소련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보여온 대표적인 매파로 분류됐다. <블룸버그> 통신은 브레진스키가 키신저와 함께 “소련을 불신하는 마음을 지닌 외교정책의 현실주의자”라고 평가했다.

브레진스키 전 보좌관은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 및 브렌트 스코크로프트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함께 미국 ‘3대 외교 거물’으로 꼽힌다. 1976년 카터 행정부에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자리를 맡은 뒤 1979년 발생해 이듬해까지 이어진 이란 주재 미국 대사관 인질 사태,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등의 시기에 미국 외교 정책 전략을 주도했다.

특히, 브레진스키는 1980년 ‘5·18 광주 민주화운동’ 과정과도 뗄 수 없는 인물이다. 1980년 5월22일 당시 국가안보좌관이었던 브레진스키 등이 참석한 백악관 상황실에서 열린 ‘정책검토회의’에서 참석자들은 ‘필요한 최소한의 무력 사용’을 통한 광주에서의 질서회복을 하기로 했다. 이는 전두환 등 신군부의 유혈진압을 사실상 묵인하는 것이었다. 브레진스키는 이를 ‘단기적으로 지지, 장기적으로 정치발전 압력’이라고 요약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전쟁에 대해 “전략적 실수”라며 반대했다. 2007년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민주당 경선 후보던 시절 지지를 선언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브레진스키는 오바마 행정부의 대외정책에 막후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로 꼽히기도 했다.

올해 2월에는 <뉴욕 타임스>에 기고문을 싣어 도널드 트럼프 현 미국 행정부를 비판했다. 브레진스키는 기고문을 통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나 ‘미국 우선주의’는 그저 범퍼 스티커일 뿐”이라며 “미국의 외교정책은 캠페인 슬로건 그 이상이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브레진스키는 일관되게 미국의 국익을 앞세운 냉혈한 현실주의자였다. 그는 1997년 출간한 <거대한 체스판>에서 냉전이 끝났음에도 “미국의 패권을 유지해야” 하며, 이 패권 유지를 위해 유라시아라는 ‘거대한 체스판’을 잘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책에서 유라시아 대륙을 서부(서유럽), 중부(러시아·동유럽·중앙아시아), 남부(동아시아), 동부(동아시아) 등 4개판으로 나눈 뒤, 미국이 초강대국으로 남으려면 다음 강국인 중국·러시아·독일 등의 영향력이 각 판을 넘어서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입장에서 미국의 가장 위험한 세력은 러시아며, 따라서 러시아의 세력 확장을 막기 위해선 중국을 무리하게 봉쇄하려 하기보다 견제와 협력을 병행한다고 밝혔다.

그는 2012년 펴낸 <전략적 비전>에서도 이런 사고 방식을 더욱 확장하고 공고히 한다. 그는 이 책에서 미국의 쇠퇴는 불가피하다는 견해를 반박하면서 △미국은 세계 제1의 경제강국이며 △경제 동력인 기술혁신에 있어서 미국은 아직 우수하며 △미국은 안정적인 천연자원을 갖고 있으며 △미국은 인권과 민주주의 같은 가치를 지키고 있다는 등의 근거를 제시했다.

특히, 그는 미국이 쇠퇴할 경우 혼돈이 찾아올 것이며 이에 따른 매우 위험해지는 나라들을 꼽았다. 그루지아와 벨로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 예속될 것이고, 대만은 중국의 영향력에 취약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한국도 중국의 지역적 패권을 수용하거나 일본과 보다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야만 하는 선택을 해야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러한 혼돈을 피하고 미국의 패권 유지를 위한 세력균형의 한 방법으로, 아시아에서 중국의 지정학적인 지배를 인정하며 주요 글로벌 파트너로 삼아야한다고 밝혔다. 미국이 어차피 ‘하나의 중국’을 수용한 이상 홍콩에 적용된 ‘일국양제’ 모델과 유사한 ‘일국다제’ 모델로 대만을 중국에 넘겨줘야 한다는 파격적인 주장을 하기도 했다.

또한, 아시아에서의 전쟁에 끌려들어가지 않기 위해 장기적으로 중-일 화해를 촉진해 미-중-일 삼각협력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철저한 강대국 중심의 사고와 지정학적 중심의 사고 속에서 한국의 역할은 늘 제한되거나 배제돼 있었다.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yy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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