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가 앨릭스 가데가가 30일 월가의 ‘용감한 소녀상’ 다리에 오줌을 싸는 모습의 강아지상을 설치하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여권 신장의 상징인가, 다른 예술가 작품에 대한 모독인가.’
미국 뉴욕 월스트리트의 명물 황소상 앞에 설치된 ‘용감한 소녀상’이 페미니즘과 예술을 둘러싼 논란의 소재로 떠올랐다.
소녀상은 올해 3월7일 ‘돌진하는 황소상’을 마주 보고 설치됐다. 기업들의 여성 임원 비중을 따지는 ‘성별 다양성 지수 SHE’의 첫돌과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해 만든 것이다. 이 지수로 만든 펀드를 파는 투자업체가 발주한 작품이다. 소녀상은 허리춤에 양손을 얹고 당당한 자세로 육중한 황소상을 치켜 보고 있다. 황소(수소)와 소녀상의 대비 효과는 골리앗에 맞서는 다윗처럼 극명하다. 소녀상 발치에는 “리더십을 추구하는 여성들의 힘을 알라”고 써 있다. 소녀상은 인스타그램에 ‘용감한 소녀상’이라는 태그가 달린 사진이 2만5천건 오를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작품을 만든 크리스틴 비즈벌은 “우리는 이런 훌륭한 대조를 의도했다”고 밝힌 바 있다. 소녀상의 인기에 빌 더블라지오 뉴욕시장은 내년 2월까지 작품을 지금의 장소에 두도록 허가했다.
그런데 뉴욕의 조각가 앨릭스 가데가는 30일 소녀상 옆에 ‘오줌 싸는 강아지상’을 설치해 논란의 한복판으로 뛰어들었다. 수캐가 한쪽 다리를 치켜들고 소녀상 다리에 오줌을 갈기는 형상의 작품이다. 가데가는 몇 시간 지나 철거한 이 작품이 소녀상의 ‘예술 모독’에 대한 응징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소녀가 황소의 공간을 침범한 것처럼 이 개도 소녀의 공간을 침범했다”고 <워싱턴 포스트>에 말했다. 또 투자업체가 소녀상을 상업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며 “소녀상은 페미니즘과는 전혀 상관이 없으며, 황소상을 만든 예술가에 대한 모독”이라고 주장했다.
황소상의 작가 아르투로 디모디카는 앞서 소녀상 설치를 “광고술”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소녀와 황소가 맞서는 이미지는 자신의 작품의 완전성을 해친다며, “가급적 소송을 피하고” 싶으니 소녀상을 어서 치우라고 요구했다. 그는 뉴욕시와 소녀상 설치 업체에 소녀상이 자신의 저작권을 훼손한다는 내용의 항의 서한도 보냈다. 디모디카는 1987년 뉴욕 증시 대폭락(블랙 먼데이)을 되풀이하지 말고 미국 경제의 활력을 되찾자는 취지로 사비 35만달러(약 3억9천만원)를 들여 황소상을 제작했다. 증시에서 황소는 활황 장세를 뜻한다. 여성 조각가 가브리엘 코렌도 “모든 조각은 (그것만의) 공간이 필요하다”며 “여성 인권을 지지한다는 이유로 한 예술가의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에스엔에스(SNS)에는 “남성 우월주의자다”, “여성혐오다”, “소녀상은 광고 차원에서 설치됐지만 모든 여성이 공감하고 있다”며 강아지상을 설치한 가데가를 비난하는 글들도 올라오고 있다.
이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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