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코미 전 미국 연방수사국(FBI) 국장의 8일 상원 정보위원회 청문회와 7일 사전 서면 증언은 ‘러시아 게이트’를 단박에 ‘사법방해’ 국면으로 바꿔버렸다. ‘사법방해’는 탄핵의 중요한 근거로, 실제 탄핵으로 이어지느냐 여부와 상관없이 이 문제가 논란의 핵으로 떠오른 것 자체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겐 치명타라고 할 수 있다.
사법방해란 미 연방법에 규정된 범죄행위로, 사법기관의 조사 절차에 부정하게 영향을 미치거나, 방해하거나, 지연시키는 행위를 가리킨다.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사임한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이나 르윈스키 성추문 스캔들에 휘말린 빌 클린턴 전 대통령도 같은 혐의에 직면했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와의 유착 의혹의 핵심 인물인 마이클 플린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 대한 수사 중단을 코미에게 요구한 것이 사법방해인지를 따지는 것 자체가 탄핵 논란과 직결돼 있는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행위가 사법방해죄가 되는지를 두고 <시엔엔>(CNN) 방송의 선임 법률분석가인 제프리 투빈은 “이게 사법방해가 아니면 무엇이 사법방해인지 잘 모르겠다”며 충분히 죄를 물을 수 있는 상황이라고 단정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핵심 인사였던 마이클 플린 전 보좌관에 대한 범죄 조사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수사 중단을 요구했고, 이런 요구가 먹히지 않자 코미를 해고했기 때문이다.
제임스 코미 전 미국 연방수사국(FBI) 국장이 8일 상원 정보위원회 청문회에 나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마이클 플린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러시아 내통 의혹에 관한 수사를 중단해달라고 요구한 것에 대해 증언했다. 사진은 지난 5월 코미 전 국장이 상원 법사위에서 증언하는 모습이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사법방해죄가 성립하려면 트럼프 대통령의 고의성을 입증하는 게 중요하다는 법률가들의 의견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의 두가지 행태가 주목받는다. 우선 ‘러시아 게이트’를 “먹구름”이라고 묘사하고 이를 걷어내달라고 요구한 점이다. 두번째로, 2월14일 백악관 면담에서 반테러리즘 브리핑을 받은 뒤 다른 참모들에게 자리를 비켜달라고 요구하고 코미와 단둘이 있는 상황을 만든 것이다.
전직 법무부 고위 관료인 마이클 젤딘은 “트럼프 대통령이 코미 전 국장과의 독대를 요구했다는 점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젤딘은 “(제프 세션스) 법무장관까지 내보낸 것은 숨은 의도가 있고, 부적절한 부탁을 할 무언가가 있었다는 것”이라며 “점점 기소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연방검사 출신의 줄리 오설리번 조지타운대 로스쿨 교수도 <에이피>(AP) 통신에 “코미 전 국장과의 대화 전에 다른 참석자들을 내보냈다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이 하려는 행동이 문제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었다는 증거”라고 밝혔다.
그러나 코미의 증언이 사법방해의 증거로는 불충분하다는 반론도 나온다. 전직 연방검사인 앤드루 매카시는 <시엔엔>에 “코미가 (트럼프의 행동을) 부적절하다고 보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그렇지만 하급자에게 압력을 가하는 것은 사법방해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조너선 털리 조지워싱턴대 교수도 “코미의 서면 증언 중 어떤 것도 트럼프 대통령이 수사를 방해해 법을 위반했다는 확신을 주지 못한다”며 “천박하거나 멍청하다고 해서 기소를 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사법방해죄 적용 여부 및 이와 연결된 탄핵에는 법률적 판단뿐 아니라 여론 및 정치적 움직임도 크게 영향을 미친다. 의회의 경우 공화당은 물론 민주당 쪽에서도 아직 탄핵을 힘있게 추진할 만한 분위기는 아니다. 상원 정보위의 민주당 간사인 마크 워너 의원은 “러시아 문제를 앞에 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내뱉은 발언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것”이라면서도 탄핵을 입에 올리지는 않았다.
여론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에이비시>(ABC) 방송과 <워싱턴 포스트>가 공동 조사해 7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61%가 트럼프 대통령이 ‘자기보호를 위해’를 러시아 게이트 수사를 지휘하던 코미를 해임했다고 대답했다. 또 퀴니피액대가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는 34%로 취임 이후 가장 낮다. 이런 여론이 의회에 압박으로 작용할 수 있다.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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