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에 많은 이들이 분통을 터뜨렸지만 ‘리스트에 포함돼야 영광’이라는 시니컬한 반응도 나온 바 있다. 미국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번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 차단 리스트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미저리>와 <쇼생크 탈출>(소설 제목은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 등을 쓴 베스트셀러 작가 스티븐 킹은 14일 “트럼프는 내가 그의 트위트를 읽는 것을 차단시켰다”고 밝혔다. 킹은 트위터에서 트럼프를 줄기차게 공격한 인물이다. 지난해 페이스북을 통해 진행한 <워싱턴 포스트>와의 라이브 인터뷰에서는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는 게 무엇보다 무섭다”고 했다. 트럼프의 트위터 계정 차단 소식을 알리기 전날에는 “이방카가 농촌에서 자랐다면 그 아버지가 정확히 뿌린 대로 거둔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킹이 트럼프의 트위터 내용 파악에 어려움을 겪는 게 걱정됐는지 <해리 포터>의 작가 조앤 롤링이 즉각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다. 롤링은 킹의 메시지가 뜬 뒤 2분 만에 트위터에 “난 여전히 (트럼프 계정에) 접속된다. 내가 디엠(DM·다이렉트 메시지)을 보내주겠다”고 했다.
트럼프가 마음에 들지 않는 글을 올리는 대상을 속속 차단시키는 가운데, <워싱턴 포스트>는 명사들 사이에 ‘차단 리스트’에 오르는 게 영광으로 받아들여지는 현상마저 있다고 전했다. 차단 알림 메시지를 자랑스럽게 올리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운용하는 계정에 대한 접근을 차단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시각도 있다. 전역 군인 50만명을 대표한다는 단체가 운용하는 ‘보트베츠’라는 계정도 차단당했다. 이 단체는 트럼프의 이슬람 6개국 국적자들에 대한 입국금지 방침에 대해 “반헌법적이고 부도덕하다”는 글을 올린 바 있다. ‘보트베츠’도 차단 메시지와 함께 “최고사령관이 우리 계정을 차단할 수는 있어도 전역 군인 50만명과 그 가족들을 침묵하게 만들 수는 없을 것”이라는 글을 올렸다.
한 시민단체는 트럼프의 트위터는 공식적 소통 수단인데 특정인들의 의견을 이유로 접근을 차단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수정헌법 제1조 위반이라는 내용의 편지를 트럼프에게 보냈다. 지난주에는 트위터 사용자 두명의 변호인들이 차단을 풀라고 요구하는 서한을 백악관에 보냈다.
이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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