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7~8일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해 다자 외교무대의 시험대에 다시 선다. 여러 문제로 눈총을 받는 그가 어떤 언행을 할지가 관심을 끄는 가운데 G20 회의 전 방문국으로 폴란드를 고른 이유를 놓고도 갖가지 해석이 붙는다.
미국 대통령이 상례를 깨고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쟁쟁한 유럽 동맹국을 첫 방문국으로 삼지 않은 데서 의문이 시작된다. 트럼프는 5월에 유럽에서 주요 7개국(G7) 정상회담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에 참석했지만 개별 유럽 국가 방문은 폴란드가 처음인 셈이다.
우선 핵심 국가들의 냉대 가능성과 폴란드의 환대 약속이 결정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는 올해 영국을 국빈방문하기로 했지만 대규모 반대 시위가 예상되자 취소할 수 있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G20 회의를 계기로 영국을 깜짝 방문할 수 있다는 보도가 나오자 영국 언론과 시민단체들이 반대 시위를 경고했다.
이와 달리 폴란드 여당인 ‘법과 정의당’을 이끌며 권력 실세로 불리는 야로스와프 카친스키 전 총리는 “트럼프의 방문은 새로운 승리”라며 “(다른 나라들은) 이것을 부러워한다. 영국은 이 때문에 우리를 공격한다”고 말했다. 현지 언론은 여당 의원 한 명당 50명씩 동원하라는 지침이 내려졌고, 지방에서는 무료 버스로 환영 인파를 나를 계획이라고 전했다. 또 폴란드 정부가 대규모 환영 인파에다 연설의 텔레비전 생중계를 백악관에 약속했다고 보도했다. 함부르크에서 10만 시위대가 기다린다는 소식을 고려하면 트럼프로서는 폴란드에서라도 면을 세울 필요가 있다. 이에 대해 알렉스 서비액 영국 서식스대 교수는 “뭔가 잘못하지 않으면, 미국 대통령은 (폴란드뿐 아니라 어디서든) 아주 인기가 많고 따뜻한 환대를 받을 것”이라고 <비비시>(BBC)에 말했다.
독일과 앙겔라 메르켈 총리를 견제하는 ‘이이제이’의 목적도 있어 보인다. 5일 미국을 출발한 트럼프는 6일 ‘바르샤바 봉기’ 기념비 앞에서 연설한다. 바르샤바 봉기는 1944년 나치 치하 폴란드인들이 무장봉기를 했다가 20만명이 살해당한 사건이다. 다른 미국 대통령들은 자유노조 지도자 등을 만나 폴란드의 민주화 여정을 강조했지만 트럼프는 독일의 과거사를 건드리고 싶은 것으로 보인다. 메르켈 독일 총리는 G7·나토 정상회의 뒤 트럼프가 파리기후변화협정 탈퇴 움직임을 보이고 집단안보공약 재확인을 하지 않은 것에 실망해 “유럽이 다른 나라들에 전적으로 의존하던 시대는 어느 정도 지나갔다”며 ‘폭탄 선언’을 했다. 이런 발언은 미국 대통령에게는 큰 망신을 주는 것이다. 한편 폴란드 정부는 유럽연합이 “독일의 강요”에 의해 움직인다며 노골적 반독일 성향을 보이고 있다.
동·서 유럽 대립을 조장한다는 시각도 있다. 트럼프는 폴란드에서 중·동부 유럽 12개국 정상들이 참여하는 에너지 협력 콘퍼런스에도 참석한다. 행사 배경에는 독일과 프랑스를 견제하면서 중·동부 유럽의 맹주로 크고 싶은 폴란드의 의지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트럼프 대통령은 역사의 어두운 시간에 보여준 폴란드인들의 용기에 찬사를 보낼 것이며, 폴란드의 유럽 강국 부상을 축하할 것”이라고 말했다.
폴란드 집권 세력과 ‘코드’도 맞는다. 2010년 비행기 추락으로 숨진 레흐 카친스키 전 대통령의 동생인 야로스와프가 주도하는 폴란드 정부·여당은 반무슬림 등 배타적 민족주의 성향이 강하다. 폴란드 정부는 유럽연합 등으로부터 사법부와 언론의 독립성을 무너뜨린다는 비난을 듣는다. <가디언>은 트럼프의 대유럽 외교가 “유럽을 단결시키는 게 아니라 분열시키는 전략이라는 우려가 크다”고 했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