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2일 버지니아주 노퍽항에서 취역식이 열린 새 항공모함 제럴드 포드호의 비행 갑판에서 함장 릭 매코맥과 악수하고 있다. 노퍽/AF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러시아 스캔들’과 관련해 미국 역사상 전례 없는 ‘셀프 사면’을 시사해 논란이 일고 있다. 그동안 트럼프 대통령의 눈치를 보던 공화당 주도의 하원도 대 러시아 제재 법안 처리 방침을 전격적으로 밝히며 반기를 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22일 트위터를 통해 “미국 대통령이 완벽한 사면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모두가 동의하고 있다. 지금까지 유일한 범죄는 (미디어들의) ‘비밀 누설’인 상황에서 사면을 생각하면 어떠냐”고 주장했다. 그는 비밀 누설 내용도 “가짜 뉴스”라고 강조했다.
이런 언급에 대해 <뉴욕 타임스>는 “트럼프 대통령이 ‘완벽한’이란 단어를 사용한 것은 사면권에 제한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그의 친척과 측근, 자신에 대한 사면까지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했다. 앞서 <워싱턴 포스트>도 트럼프 대통령과 측근들이 사면 문제를 논의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가족 및 측근들은 물론 ‘셀프 사면’까지 고려하는 것은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가 ‘러시아 스캔들’ 조사를 전방위적으로 강화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뮬러 특검은 트럼프 대통령의 장남 트럼프 주니어와 러시아 변호사 간의 회동과 관련한 모든 자료를 보존할 것을 백악관에 요청했다고 <시엔엔>(CNN) 등이 이날 보도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트럼프 주니어의 회동 사실을 파악하고 있었는지, 사후 보고를 받았는지도 조사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측근이었던 제프 세션스 법무장관도 지난해 대선 기간에 세르게이 키슬랴크 주미 러시아대사와 두 차례 만나 대선 관련 문제를 논의했다고 <워싱턴 포스트>가 전·현직 미 당국자를 인용해 21일 보도했다. 세션스 장관은 대선 기간에 키슬랴크 대사와 만난 적이 없다고 주장해왔다.
트럼프 대통령의 사면 논리가 타당한지에 대해선 비판이 속출하고 있다. 트위터 댓글들을 보면 “죄가 없다고 주장하면서 무슨 사면이냐”, “유일한 범죄는 ‘비밀 누설’이 아니다. 누설된 내용이 맞다면, 당신은 범죄를 저지른 것”이라고 꼬집는 글이 잇따랐다.
법률 전문가들도 ‘셀프 사면’은 법리적으로 타당하지 않을 뿐 아니라, 의혹이 확산되는 상황에서 가족·측근에 대한 ‘사면 카드’를 공론화함으로써 되레 역풍을 불러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리처드 프리머스 미시간대 법학 교수는 “절대다수 헌법학자들은 셀프 사면이 법의 지배라는 미국의 기본적 가치에 대한 근본적 모욕이기 때문에 안 된다는 입장”이라고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에 밝혔다. 스스로의 문제에 스스로 판관이 될 수 있냐는 근본적 문제에 부딪힐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피터 자이덴버그 전 연방검사도 “뮬러 특검은 대배심 앞에 사면 (대상) 인사들을 불러 세운 뒤, 이 사면이야말로 (대통령 탄핵 사유가 되는) 사법방해 계략이 아니고 무엇이냐고 질문을 던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원이 22일 공화·민주당의 합의 하에 북한·이란 제재법과 함께 러시아 제재 법안을 오는 25일 일괄 처리하기로 한 것도 트럼프 대통령한테는 상당한 정치적 배패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러시아 제재 법안은 지난달 상원을 압도적 표차로 통과했지만 트럼프 대통령과 백악관이 제재를 완화하라며 공화당 하원의원들을 상대로 물밑 로비를 펼치면서 처리가 지연돼왔다.
러시아 제재 안은 대통령이 러시아 제재를 완화하거나 해제하려 할 때는 반드시 의회의 검토를 거쳐야 한다고 명시해, 트럼프 대통령의 완화 시도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내용을 담았다.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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