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 주재 미국대사관. 출처: 모스크바 타임스
러시아가 외교관 추방으로 미국에 대한 보복에 나섰다. 미국 상원에서 러시아 제재 법안이 통과된 지 하루 만에 나온 조처로, 외교관 맞추방으로 대립했던 냉전시대의 흐름이 재연되는 분위기다.
러시아 외무부가 28일 모스크바 주재 미국대사관 등의 외교관과 소속 기술 인력을 9월1일까지 감축하라는 요구를 했다고 <에이피>(AP) 통신이 보도했다. 러시아는 미국 외교인력 규모를 자국이 미국에 파견한 455명으로 맞춰야 한다고 밝혔다. 감축 요구 규모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애초 미국이 러시아의 대선 개입 시도를 이유로 지난해 말 추방한 러시아 외교인력(35명)과 비슷한 인원을 내보낼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일각에서는 1100여명으로 파악되는 미국 대사관·영사관 인력이 기준이라면 대규모 추방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한다. <인테르팍스> 통신은 “수십명이 아니라 수백명을 얘기하는 것”이라는 러시아 정부 소식통 말을 전했다. <리아노보스티> 통신은 추방 인원이 200~300명 규모일 것이라고 보도했다.
러시아 정부는 또 미국 외교인력 휴양시설과 창고를 8월1일부로 압류한다고 밝혔다. 역시 지난해 말 미국이 뉴욕과 메릴랜드주의 러시아 외교 시설 두 곳을 압류한 것에 대한 보복이라고 할 수 있다.
러시아 외무부는 이날 낸 성명에서 미국 상원이 통과시킨 추가 제재 법안에 대해 “국제 문제에 관한 미국의 극단적 공격 행태”라며 “‘미국 예외주의’ 뒤에 숨어 다른 나라들의 입장과 이익을 거만하게 무시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또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에 대해 제재를 가한 뒤 이번에는 대선 개입도 문제삼은 것을 두고 “러시아의 (대선) 개입이라는 전적으로 지어낸 얘기를 가지고 막돼먹은 제재를 차례대로 밀어붙이고 있으며, 이 모든 행위는 국제법 원칙에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미국 상원은 전날 하원에 이어 러시아에 대한 강력한 제재 내용을 포함한 러시아·이란·북한 ‘3국 제재 패키지법안’을 찬성 98표, 반대 2표라는 압도적 표차로 통과시켰다. 법안은 러시아 에너지 기업의 미국 및 유럽 내 석유와 가스 프로젝트를 겨냥하고 있다.
추가 제재 법안 통과는 러시아뿐 아니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한테도 일격을 가한 것이다. ‘러시아 스캔들’ 와중에도 관계 해빙을 모색했던 트럼프 대통령은 손발이 꽁꽁 묶이게 됐다. 법안은 특히 대통령이 현재의 러시아 제재를 완화하거나 해제하려 할 때는 반드시 의회의 검토를 거쳐야 한다고 명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시도하려는 러시아 제재 완화를 원천적으로 봉쇄한 셈이다. 의회가 특정국 제재를 시행하라는 법안을 통과시켜도 이행 여부나 수위 조절은 행정부 재량에 맡기는 것이 일반적 관례였다. 그러나 이번 법안은 행정부의 재량권을 조금도 인정하지 않는 희귀한 사례다.
한편 버락 오바마 전 행정부의 건강보험법을 폐지하려는 트럼프 행정부의 시도가 또 좌절됐다. 미국 상원은 28일 새벽 ‘오바마케어’를 대체하는 ‘스키니 리필’ 법안을 찬성 49, 반대 51로 부결시켰다. 이로써 오바마케어를 폐지 혹은 대체하려는 트럼프 행정부의 세번째 시도마저 실패했다. 뇌 수술 이후 치료중이던 공화당의 존 매케인 상원의원도 반대표를 던져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본영 기자,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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