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웨스트버지니아 헌팅턴의 빅 샌디 슈퍼스토어 아레나에서 열린 지지자 집회에 참석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헌팅턴/AP 연합뉴스
“자금 조달은 어떻게든 방법이 나올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멕시코가 장벽에 돈을 내지 않겠다고 말한다면, 당신들과 더이상 만나지 않을 것이다. 그걸 용납할 수는 없다.”
멕시코와의 국경에 장벽을 건설해 멕시코에 비용을 부담시키겠다며 큰소리를 쳐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국민을 기만하는 꼼수를 부린 것으로 드러났다. 취임 뒤 엔리케 페냐 니에토 멕시코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장벽 건설) 자금 조달은 다른 방법이 있으니, 멕시코는 비용을 부담하지 않겠다는 말은 하지 말라’며 회유하고 압박한 발언 등이 담긴 통화 녹취록을 <워싱턴 포스트>가 입수해 3일 보도했다.
트럼프는 지난 1월27일 니에토 대통령과의 첫 통화에서 “(국경장벽이) 중요성이 가장 적은 것이지만, 정치적으로는 가장 중요할 수 있다”고 말해, 장벽 건설이 정치적 목적을 위한 것임을 시사했다. 니에토가 멕시코는 장벽에 돈을 댈 수 없다며 “나의 입장은 아주 단호하고 계속 그럴 것이다”라고 말하자, 트럼프는 “당신은 그걸 언론에 말할 수 없다. 언론은 그것을 보도할 것이고 나는 견딜 수 없다”고 대꾸했다.
니에토는 타협책으로 장벽에 대한 언급을 중단하는 데 동의했으나, 트럼프는 국경세나 미국 내 멕시코 노동자들이 본국에 보내는 송금을 봉쇄하겠다는 협박을 했다. 트럼프는 장벽에 관한 질문을 받으면 “우리가 해결하겠다”고 말해야 한다고 요구하기도 했다.
<워싱턴 포스트>가 이날 보도한 전화통화 녹취록 내용을 보면, 트럼프가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동맹국과의 관계는 아랑곳하지 않는 무례한 모습들을 확인할 수 있다. 1월28일 맬컴 턴불 오스트레일리아 총리와의 통화에서 트럼프는 양국이 운영하는 역외 수용소의 난민을 받아주기로 한 버락 오바마 전 행정부 시절의 합의를 지킬 수 없다며 불만을 터트렸다. 턴불이 이 합의를 거론하자, 트럼프는 “난민들을 데려오는 것을 싫어한다”고 분위기를 갑자기 악화시켰다. 턴불이 합의를 지켜야 한다고 촉구하자, 트럼프는 화를 내며 난민들이 “5년 안에 보스턴 폭탄테러범이 될 것이다”라고 응수했다.
트럼프는 이날 독일, 일본, 프랑스, 러시아 정상 등과 통화를 했다며 “신물이 난다. 이런 전화들을 온종일 하고 있다”고 했고, “이 통화가 오늘 하루 중 가장 불쾌한 통화”라고 쏘아붙였다. 그는 특히 “푸틴과의 통화는 유쾌했다. 이건 우스꽝스럽다”고 덧붙였다. 턴불이 시리아 문제 등 다른 현안으로 화제를 돌리려 하자, 트럼프는 거부하고는 24분 만에 통화를 끊어버렸다.
정의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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