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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중남미

베네수엘라 제헌의회, ‘최고 권력기관’ 셀프 선포

등록 2017-08-09 15:47수정 2017-08-09 22:00

마두로 정권, 독재 권력 다지기 나서
빈민과 군부가 사태 향방의 관건
베네수엘라에서 연일 계속되는 전국적 반정부 시위에도 불구하고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이 버티는 것은 우고 차베스 정권 이후 정부의 관대한 복지 혜택을 받은 빈민층과 군부의 굳건한 지지가 있기 때문이다. 반정부 시위대에 맞서는 차베스주의 민병대들이 대규모 집회를 하고 있다. 카라카스/EPA 연합뉴스
베네수엘라에서 연일 계속되는 전국적 반정부 시위에도 불구하고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이 버티는 것은 우고 차베스 정권 이후 정부의 관대한 복지 혜택을 받은 빈민층과 군부의 굳건한 지지가 있기 때문이다. 반정부 시위대에 맞서는 차베스주의 민병대들이 대규모 집회를 하고 있다. 카라카스/EPA 연합뉴스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이 구성한 제헌의회가 스스로 최고 권력기관임을 선포했다. 베네수엘라 사태가 마두로 정권의 권력 굳히기 또는 실각으로 가는 기로로 접어들고 있다.

베네수엘라 제헌의회는 8일 모든 정부 기관보다도 제헌의회가 우위에 있다는 내용의 법령을 통과시켰다. 이는 우파 야권이 장악한 기존 의회가 통과시킨 법률 등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권한이 제헌의회에 있음을 의미한다.

제헌의회는 마두로 정권이 지지자를 중심으로 일방적으로 강행한 7월30일 선거를 통해 구성됐다. 마두로 정권의 지지 세력으로 구성된 제헌의회가 의회 등 기존 헌법기구를 무력화하며 개헌 권한까지 틀어쥐게 되면, 마두로 정권의 독재적인 권력은 굳어지게 된다.

길게는 2013년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의 사망 이후, 짧게는 지난 3월29일 대법원의 의회 권력 박탈 결정으로 격렬해진 베네수엘라 반정부 시위 사태는 제헌의회의 성공 여부에 따라 갈릴 것으로 보인다.

차베스주의 세력 대 친미우파 세력 베네수엘라 사태는 차베스주의 세력 대 친미우파 세력의 대결 전선이다. 전통적으로 친미우파 정부가 집권해온 베네수엘라에서는 1990년대 초 우고 차베스가 등장하면서 중남미 전역의 정치지형 지진의 근원이 됐다. 반미좌파 민족주의 성향의 차베스는 1992년 군사쿠데타를 주도했다가 실패해 투옥됐다. 그는 출옥 2년 뒤인 1998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당선되며, 중남미의 정치 태풍이 됐다.

당시부터 오르기 시작한 세계적인 원자재 가격 상승 속에서 베네수엘라에 풍부한 석유를 수출한 자금으로 전례 없이 관대한 복지정책을 펼쳐, 빈민 및 중하류층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어냈다. 그는 기존 기득권 세력 등 친미우파 세력들의 반격으로 2002년 4월 군부쿠데타로 한때 연금되며 실각의 위기에 처하기도 했으나, 이를 분쇄하고 권력에 복귀했다. 차베스는 사망한 2013년까지 4선의 대통령을 지내며 차베스주의 세력을 공고화했다. 차베스가 암으로 갑자기 사망한 뒤 니콜라스 마두로 현 대통령은 대선에서 압도적으로 승리해 그를 계승했다. 하지만, 차베스 사망 전부터 하락하기 시작한 석유 값은 베네수엘라의 재정을 압박하며, 마두로 정권의 기반인 복지정책을 뒤흔들고 물가를 앙등시켰다. 이는 반정부 시위 사태의 배경이다.

‘석유의 저주’ 차베스 및 마두로 정권의 성공과 실패는 모두 석유에서 비롯됐다. 베네수엘라에 풍부한 석유는 값이 오르면 정부의 경제 및 재정 정책을 순항시켰다. 하지만, 석유에만 기댄 베네수엘라의 경제는 다른 산업 육성을 위축시켜, 석유 값이 떨어지면 재앙적인 상황에 직면했다.

석유는 베네수엘라 수출의 95%를 차지한다. 2008년 금융위기 전에 한때 배럴당 150달러에 육박하던 석유 판매 수입으로 차베스 정권은 빈민과 중하류층을 위한 주택, 의료, 교육을 제공했다. 특히 빈민들에게는 전례가 없던 관대한 각종 보조금 등 혜택을 베풀었다. 하지만 금융위기 이후 석유 값이 20달러 선으로 떨어지자 베네수엘라 경제는 파산 위기에 들어섰다. 복지 혜택은 위축되고 수입에 의존하던 각종 생필품 값은 앙등했다.

카라카스의 안드레스벨로대의 저명한 정치학자이자 사제인 루이스 우갈데는 베네수엘라를 ‘의도는 좋으나 무능한 의사들에 맡겨져 죽음의 벼랑 끝에 있는 환자’로 비유했다. 그는 베네수엘라 문제의 중심에는 그 나라가 부자 나라라는 잘못된 믿음이 있었다고 지적한다. 차베스 이후 정권은 베네수엘라가 석유 외에는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는 가난한 나라인데도 급등한 석유 값에 기대어 아무런 산업도 육성하지 않고 석유 판매 수입을 탕진했다는 것이다.

과거 친미우파 정권에서는 석유 수입을 엘리트가 독점한 반면에 차베스 이후 정권은 그 수입을 중하류층들에게 대책 없이 살포했다는 것이다.

2013년 차베스가 갑작스럽게 사망하자, 친미우파 세력들은 대중들의 불만을 업고 본격적으로 반정부 투쟁에 나섰다. 마두로는 최악의 경제 상황에서 집권한 데다, 차베스에 비해 카리스마도 부족했다. 하지만 마두로는 차베스 정권 이후 시혜를 받은 빈민 등을 중심으로 한 차베스주의 세력에 기대어 반정부 세력과 그 시위에 강경대처했다. 우갈데 교수는 마두로가 민주적으로 당선된 것은 분명하나 “베네수엘라는 지금 독재정권이다”라고 지적했다.

의회 권력 박탈 결정으로 반정부 시위 격화 마두로 정권 출범 이후 잦아지던 반정부 운동은 지난 3월29일 대법원의 의회 권력 박탈 결정으로 폭발했다. 앞서 친미우파 세력이 주축이 된 야권연대인 민주연합원탁테이블은 2015년 12월 총선에서 압승했다. 의회를 장악한 친미우파 야권 세력들은 마두로를 권력에서 축출하려는 대통령 소환 국민투표를 조직하며 마두로 정권과 격렬하게 맞섰다.

이에 마두로 정권은 대법원을 내세워 의회의 권한을 박탈하고 이를 법원으로 이양하는 결정을 이끌어냈다. 3일 뒤 대법원은 논란이 된 결정들을 다시 취소했으나, 이는 반정부 시위에 기름을 붓는 사태로 발전했다.

야권이 장악한 의회 무력화에 실패한 마두로 정권은 지난 5월초에 개헌을 위한 제헌의회 구성을 발표했다. 마두로 정권의 제헌의회 구상은 결국 7월30일 선거로 관철돼, 현재 마두로 정권의 운명을 가를 분수령으로 떠올랐다.

빈민과 군부가 사태 향방의 관건 야권은 △친정부적 대법원 판사의 축출 △2017년 총선 △모든 정치범 석방 △인도적 위기 해결을 위해 해외로부터의 의료 등 인도적 지원 허용 등을 핵심 요구 조건으로 내걸고 있다. 3월 이후 베네수엘라 전역으로 반정부 시위가 번져, 매일 격렬한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마두로 정권이 곧 무너질 조짐은 아직 없다. 굳건한 차베스주의 세력이 있기 때문이다. 차베스주의 세력의 본산은 빈민층과 군부다. 차베스 이후에 관대한 정부 혜택을 맛본 빈민들은 마두로 정권 붕괴로 얻을 것이 별로 없다. 또 군부는 차베스 정권 이후 실패한 쿠데타 등으로 반차베스 세력이 완전히 숙청되고 차베스주의 세력으로 채워진 상태이다.

마두로 정권이 붕괴되려면 반정부 시위가 빈민가인 ‘바리오’로 번져야 한다는 것이 분석가들의 지적이다. 또 군부가 마두로 정권에 대한 지지를 거둬들여야 한다. 블라디미르 파드리노 국방관은 지난 5월20일 트위터에서 시위대들이 무정부 상태를 부추기고 폭력을 비난하지 않는 국제적인 공모 세력이 있다고 비난했다. 군부는 현재까지 마두로 정권을 지켜주는 충실한 역할을 마다하지 않고 있다.

야권 내부도 단결이 공고하지는 않다. 제헌의회 선거 이후 야권연대에 참여 중인 주요 정당이 오는 12월10일 치러질 23개 주의 주지사 선거에 참여하기로 해 반정부 시위 동력이 현저히 떨어지고 있다.

마두로 정권은 느슨한 야권연대를 파고들며 주요 야당 지도자들을 각개격파하고 있다. 대법원은 이날 반정부 시위의 중심지로 떠오른 차카오시의 라몬 무차초 시장에 대해 징역 15개월형을 선고했다. 대표적 반정부 인사로 가택연금중인 레오폴도 로페스가 전임 시장이었던 차카오시는 수도 카라카스 동부에 있는 도시로 반정부 시위대의 주요 집결지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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