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1981~89)을 핵가방을 든 장교가 수행하고 있다.
가장 강력하고 가장 많은 핵무기를 지닌 미국 대통령은 순간적 판단으로 발사 버튼을 누를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의 위협에 맞서 핵무기 사용도 불사하겠다는 식의 태도를 보이면서,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불거진 ‘트럼프에게 핵가방을 맡겨도 되나’라는 논란이 새삼 회자된다.
핵가방은 ‘대통령의 비상 가방’ 또는 ‘뉴클리어 풋볼’로도 불린다. 핵전쟁 직전까지 간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때 현재의 시스템이 갖춰진 것으로 알려졌다. 담당 장교가 대통령이 가는 곳은 어디든 밀착 수행하며 들고 다니는 핵가방에는 핵 공격에 필요한 매뉴얼과 암호가 들어 있다. 대통령의 유고에 대비해 부통령에게도 핵가방이 배정돼 있다. 적국이 핵무기를 쏘는 등 비상 상황이 되면 미국 대통령은 이 가방을 열어 반격의 범위와 수단을 설정해 매뉴얼대로 행동한다. 지상 발사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전략폭격기 탑재 핵폭탄,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 등 본토와 해외 기지에 배치된 갖가지 핵무기들 중 무엇을 사용할지 정해 국방부 지휘센터 등에 지시를 내린다. 북한이 공격 가능성을 공언한 괌 기지의 전략폭격기들도 핵폭탄 탑재 능력을 갖고 있다.
문제는 비상 상황에서는 단 몇분 만에 대통령이 독단적으로 핵무기 사용 명령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냉전 시기에는 미국의 조기경보시스템이 자체적으로 오류를 일으키거나 달빛을 미사일로 오인하는 경우도 있었다. 잘못된 경보 탓에 소련을 상대로 핵무기를 이용한 반격이 검토되는 급박한 상황도 발생했다. 그만큼 신중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어, 경보시스템은 교차 확인 절차를 강화했다. 핵가방을 다루는 장교들은 엄격한 신원조회를 거쳐 선발한다. 그러나 대통령을 통제할 제도적 수단은 없다. 대통령의 잘못된 명령을 무력화할 유일한 방법은 항명뿐이라는 말도 있다.
<워싱턴 포스트>는 이처럼 순간적 판단으로 세계를 파멸로 몰고 갈 수 있는 핵가방을 과연 트럼프한테 맡겨도 되냐는 논란이 새삼 회자되고 있다고 9일 보도했다. 대선 운동 과정에서 “(이슬람국가를) 폭탄으로 다 날려버리고 싶다”, “난 전쟁을 좋아한다”, “예측 불가능한 사람이고 싶다”, “핵무기를 못 쓸 이유가 뭔가?”라며 호전적 태도를 노골화한 바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내놓은 “화염과 분노” 발언도 그 연장선이다.
대선 당시에 상대 후보 힐러리 클린턴은 트럼프에게는 핵가방을 맡겨서는 안 된다는 점을 공격 포인트로 삼았다. 공군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담당한 브루스 블레어는 힐러리 캠프가 만든 텔레비전 광고에 출연해 “트럼프가 핵무기를 갖게 된다고 상상하면 무서워 죽을 지경”이라고 말했다. <폭스 뉴스> 조사에서는 핵무기 사용에 대한 여론의 ‘신뢰도’가 힐러리는 57%, 트럼프는 31%였다. 이런 위기감 때문에, 핵무기를 관장했던 공군 장교 출신 10명이 당시 “트럼프한테 핵무기 발사 암호를 넘기면 안 된다. 그는 쉽게 미끼를 물고, 즉각 보복하고, 전문가들 의견을 무시하고, 군사와 외교 분야를 잘 모른다”는 내용의 공개 서한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 서한에 서명한 마크 러스키는 지난해 가을에 한 경고가 들어맞고 있다며 “트럼프는 충동적으로 말하고, 충동적으로 행동한다. 그를 자제시킬 수단이 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그가 뉴욕을 방문할 때 핵가방을 ‘가정집’인 트럼프타워에 보관하려고 시도했다는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한편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화염과 분노” 발언에 대해 존 켈리 비서실장 및 안보 관리들과 협의한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즉흥적 발언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이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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