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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중남미

‘우파여 단결하라’ 미국 극우의 역사전쟁

등록 2017-08-14 15:25수정 2017-08-14 20:57

남부연합 영웅 리 장군 동상 철거…버지니아 난동 도화선
주요 도시에서는 백인민족주의를 비난하는 집회 잇따라
지난 4월 미국 버지니아주 샬러츠빌에서 로버트 리 장군의 동상 철거에 반대하는 이들이 집회를 열고 있다.
지난 4월 미국 버지니아주 샬러츠빌에서 로버트 리 장군의 동상 철거에 반대하는 이들이 집회를 열고 있다.
지난 12일 미국 버니지아주 샬러츠빌의 ‘백인민족주의’ 난동 현장에서는 남북전쟁 때의 남부연합 군기가 많이 눈에 띄었다. 일부는 X자 바탕에 별을 그린 남부연합 군기를 군복에 새기고 마치 내전에 나선 듯한 장면까지 연출했다.

차량 충돌과 헬기 추락으로 3명의 사망자를 낸 이번 사건은 150여년 전 남북전쟁의 상흔과 백인민족주의가 결합하면서 ‘역사 전쟁’이 격화되는 미국의 현실을 보여준다. ‘우파여 단결하라’라는 구호 아래 미국 각지에서 6천여명을 불러모은 것은 남부연합 총사령관 로버트 리 장군의 동상 철거 문제다. 시의회는 지난 4월 리 장군 동상과 함께 다른 남부연합 장군인 스톤월 잭슨의 동상을 철거하기로 의결했다. 각각 이들 이름을 딴 공원 명칭은 이맨시페이션(해방)공원과 저스티스(정의)공원으로 바꿨다. 이때부터 ‘남부연합 참전 군인 아들들’이라는 단체 등의 반대가 시작됐고, 법원은 철거를 6개월 연기시켰다.

12일 리 장군의 동상이 있는 샬러츠빌 공원으로 입장하는 백인민족주의 시위대의 손에 성조기와 함께 남부연합 군기가 들려있다. 샬러츠빌/AP 연합뉴스
12일 리 장군의 동상이 있는 샬러츠빌 공원으로 입장하는 백인민족주의 시위대의 손에 성조기와 함께 남부연합 군기가 들려있다. 샬러츠빌/AP 연합뉴스
100년 전 설치된 동상의 철거를 결정한 것은 리 장군이 갈수록 백인민족주의자들의 상징으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리 장군은 남부가 연방 분리와 노예해방 반대를 내걸고 북부와 내전에 빠졌을 때 남부연합군을 이끌었다. 하지만 ‘고향(버지니아) 편’을 들겠다며 남부연합에 합류한 그는 분열과 인종주의의 상징보다는 한니발이나 로멜처럼 때를 잘못 만난 군사 천재로 기억되는 측면이 강했다. 동상은 역사 교육 소재로 받아들여졌다. 미국 육군사관학교의 막사 하나에도 그의 이름이 붙을 정도였다.

백인민족주의의 발호가 상황을 바꿔놨다. 특히 2015년 노예해방운동의 상징인 사우스캐롤라이나 찰스턴의 흑인 교회에서 백인민족주의자의 총기 난사로 9명이 사망한 사건의 충격이 컸다. 범인의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남부연합군 깃발 등의 콘텐츠가 발견됐다. 이후 미국 각지에서 남부연합의 기념물을 철거하는 움직임이 일었다. 미국 전역에는 1천여개의 남부연합 기념물이 설치된 것으로 추산된다.

버지니아는 주도 리치먼드가 남부연합의 수도였기 때문에 상징성이 더 강하다. 백인민족주의에 ‘대안 우파’(alt-right)라는 개념을 부여하고 철거 반대 시위를 이끈 리처드 스펜서도 버지니아대 출신이다. 백인민족주의자들은 두 장군의 동상이 그들의 고향에서도 철거된다는 데 분개해 이미 몇 차례 시위를 진행했다.

13일 백인민족주의자들의 난동에 항의하는 백악관 앞 집회 참가자가 “대안 우파(alt-right)를 지우라”고 적은 손팻말을 들고 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13일 백인민족주의자들의 난동에 항의하는 백악관 앞 집회 참가자가 “대안 우파(alt-right)를 지우라”고 적은 손팻말을 들고 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역사 전쟁’의 불똥은 백악관으로도 튀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사건 당일 “여러 편에서 나타나는 이런 지독한 증오와 편견, 증오를 비난한다”고 말했다. 이런 양비론적 태도는 극단주의자들을 적절히 비판하지 않은 것이고, 자신의 지지 기반을 사실상 감싼 것 아니냐는 지적이 쏟아졌다. 백악관은 13일 “대통령이 비난한 대상에는 큐클럭스클랜(KKK)과 신나치 등 모든 극단주의 그룹이 포함된다”는 성명을 내놨다. 허버트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도 대통령은 극우 폭력에 매우 비판적이라며 수습에 나섰다.

하지만 극단주의자들의 기를 살린 것은 결국 트럼프 대통령이라는 비난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시위를 이끈 스펜서는 트럼프의 당선 열흘 후인 지난해 11월19일 한 행사에서 “하일(만세), 트럼프”라며 나치식 표현을 쓰기도 했다. 당시 스펜서는 “미국은 우리 자신과 후손들을 위해 디자인된 백인 국가”라고 강조했다. 이번 사태 직후에도 “샬러츠빌로 돌아가 우리의 반대자들을 모두 굴복시키겠다”고 호언장담했다. 13일 워싱턴·뉴욕·로스앤젤레스·필라델피아 등 주요 도시에서는 백인민족주의를 비난하는 집회가 잇따랐다.

2급살인 혐의로 체포된 제임스 앨릭스 필즈. AP 연합뉴스
2급살인 혐의로 체포된 제임스 앨릭스 필즈. AP 연합뉴스
한편 차량 돌진으로 백인민족주의 반대 집회 참가자 1명을 숨지게 하고 중상자 5명을 비롯해 19명을 다치게 한 제임스 앨릭스 필즈(20)는 나치에 심취한 인물이라고 <워싱턴 포스트>가 그의 고교 교사를 인용해 보도했다. 오하이오주에서 필즈에게 역사를 가르친 데렉 웨이머는 “그는 나치즘에 매료됐고 히틀러를 숭배했다. 난 (그것을 교정하려고) 최선을 다했지만 실패했다고 인정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 나라를 찢어놓는 백인 지상주의에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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