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 워싱 논란으로 <헬보이: 라이브 오브 더 블러드 퀸>에서 하차하기로 한 영국 출신 할리우드 배우 에드 스크레인(왼쪽). 오른쪽은 그가 캐스팅 됐던 벤 다이미오 캐릭터. 이미지 출처: 에드 스크레인 트위터
영국 출신 할리우드 스타 에드 스크레인(34)이 ‘화이트 워싱’논란으로 <헬보이: 라이브 오브 더 블러드 퀸>에서 하차하기로 했다. 할리우드에서는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셸> 등 원작이 있는 작품을 영화화할 때 백인이 아닌 배역에 백인 배우를 캐스팅 하는 ‘화이트 워싱’ 관행이 오랜 논란거리다.
국내에서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으로 유명한 스크레인은 지난주 <헬보이>의 주연 벤 다이미오 소령 역할에 캐스팅됐다. 화가 나면 재규어로 변하는 캐릭터로, 원작에서는 일본계 미국인으로 나온다. 일본계 배역을 백인 스크레인한테 맡겼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소셜미디어에서는 화이트 워싱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일었다.
논란이 거세지자 스크레인은 28일 트위터와 인스타그램에 올린 성명에서 “원작의 캐릭터가 아시아계라는 점을 알지 못한 채 캐스팅 제의를 받아들였다”며 “(캐스팅) 발표 이후 집중적인 토론과 이해할 만한 분노가 있었고, 내가 옳다고 느끼는 대로 해야 한다”고 하차 배경을 설명했다.
아울러 그는 “사람들한테 이 캐릭터를 문화적으로 정확한 방식으로 표현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은 분명하며, 이런 책임을 무시하면 예술에서 소수 인종 이야기와 목소리를 모호하게 만드는 우려스러운 경향을 지속시키게 된다”는 소신도 밝혔다. 이어 “어려운 시기에 윤리적인 결정을 하고, 포용성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우리의 책임”이라며 “언젠가 이런 논의가 덜 중요해지길 바라며, 예술과 현실 속에서 (모든 인종이) 동등한 표현을 할 수 있게 만드는 데 일조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헬보이>의 프로듀서 래리 고든과 로이드 레빈 역시 공동 성명을 통해 스크레인의 결정을 지지했다. 두 사람은 “우리는 에드의 이기적이지 않은 결정을 전적으로 지지한다”며 “진정성과 민족성 이슈에 무감각하려던 의도는 아니었고, 원작 캐릭터와 좀 더 일치하는 배우를 다시 캐스팅 할 수 있도록 찾아보겠다”고 밝혔다.
<할리우드 리포터>는 할리우드에서 톱스타가 화이트 워싱 논란으로 하차한 건 처음이라고 전했다. 첫 하차라는 사실이 놀라울 정도로 할리우드의 화이트 워싱 역사는 깊다. 20세기 초부터 백인 배우들이 흑인이나 아시아인 배역을 맡아 인종적인 편견과 과장이 반영된 분장을 하고 등장하는 영화들이 심심찮게 있었다.
지난해 화이트 워싱 논란을 일으킨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 속의 스칼릿 조핸슨. 사진 제공: 롯데엔터테인먼트
21세기 들어 흑인 배우의 입지가 강화되면서 백인이 흑인 역할을 하는 영화는 거의 사라졌다. 하지만 1961년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미키 루니가 뻐드렁니 분장을 하고 일본인 지주 역할을 한 이래, 백인이 아시아계 역할을 하는 사례는 최근까지도 빈번하다. 특히 <헬보이> 배우와 제작진이 재빨리 캐스팅을 철회한 건 <공각기동대>의 여파가 크다. 지난해 스칼릿 조핸슨이 일본 만화 원작인 이 영화에 주연으로 캐스팅돼 흑발 분장을 했다. 영화는 화이트 워싱 논란 끝에 최소 6000만달러(약 675억원)의 손실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
전정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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