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대변인에게 편지를 보내 트럼프타워 건립에 도움을 요청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최측근인 마이클 코언 변호사. A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러시아 커넥션 의혹을 풀 실마리가 하나둘씩 드러나고 있다.
트럼프 쪽이 모스크바의 트럼프타워 건립을 위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측근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 밝혀졌다. 또 한 측근은 푸틴과의 거래를 제안하며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에 기여할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런 사실들은 아직까지는 트럼프 쪽의 일방적 제안인 것으로 드러났으나, 트럼프 쪽이 푸틴 쪽에 적극적으로 다가선 정황을 보여준다.
최근 며칠 사이에 드러난 트럼프의 러시아 커넥션 의혹은 트럼프의 사업체가 모스크바에 건립하려던 트럼프타워와 연관된 것이다. 이는 <워싱턴포스트>가 지난 27일 모스크바의 트럼프타워 건립 계획을 보도하면서 불거졌다.
신문은 트럼프가 대선 후보 시절인 2015 년말부터 지난해 초까지 그의 회사인 ‘트럼프 오가니제이션’이 모스크바에 트럼프타워를 건립하려는 계획을 세웠고, 러시아 출신 브로커인 펠릭스 세이터가 사업 승인을 위해 푸틴 쪽에 거래를 시도했다고 보도했다. 이 보도를 계기로, 트럼프 쪽이 모스크바의 트럼프타워와 관련해 푸틴 쪽에 보낸 서한 등이 미국 언론들에 보도되며 더 구체적 사실들이 드러나고 있다.
푸틴 대변인에게 접근
트럼프 오가니제이션의 부회장이었던 마이클 코언 변호사는 지난해 1월 푸틴의 측근인 드미트리 페스코프 대변인에게 이메일을 보내 “지난 몇달 동안 나는 모스크바의 트럼프타워 프로젝트 개발과 관련해 러시아에 있는 회사와 일해왔다”, “자세한 것을 길게 말할 필요가 없이 우리 양쪽의 소통이 정지된 상태”라며 고충을 호소했다. 그는 “이 프로젝트가 너무 중요해서, 나는 여기서 당신의 지원을 요청한다”며 “적절한 사람과의 만남뿐만 아니라 세부사항을 논의할 수 있는 사람, 가능하면 당신이 나와 접촉할 수 있도록 정중하게 요청한다”고 부탁했다.
트럼프의 러시아 커넥션을 조사하는 하원에 제출된 코언의 이 편지는 트럼프의 최측근이 푸틴 정부의 고위 인사에게 직접적으로 접근한 가장 명백한 증거다.
코언은 트럼프의 최측근 중 한 명으로 그의 사업 대리인과 변호사, 대변인으로 일해왔다. 코언은 크림반도를 러시아에 장기 임대하는 방안을 우크라이나 국민투표에 회부해서 서방의 러시아 제재를 해제하는 방안을 백악관에 전달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코언은 이 편지에 대해 28일 성명을 통해 페스코프한테 답장을 받지 못했고, 러시아 정부 관리와 더 이상의 접촉이 없었다고 의회에 해명했다. 그는 이 프로젝트가 정부 허가가 보장되지 않아서 “사업상의 이유”로 폐기됐고, 이 문제는 트럼프의 대선 운동과 어떤 형식으로든지 관련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코언은 이 사업의 브로커였던 세이터의 추천에 따라 이 이메일을 발송했다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부동산 회사가 모스크바에서 추진했던 트럼프타워 건립의 브로커 역할을 했던 펠릭스 세이터(오른쪽)가 2007년 9월 뉴욕의 트럼프 소호 개막식에서 트럼프와 함께하고 있다. <뉴욕 타임스> 갈무리
모스크바 트럼프타워와 트럼프 선거운동 연계
브로커인 세이터가 이 사업을 트럼프의 선거운동과 연관시키는 적나라한 편지도 공개됐다. 세이터는 2015년에 코언에게 몇차례 이메일을 보내 푸틴과 자신의 관계를 자랑하며, 모스크바에 트럼프타워를 짓는 것은 트럼프의 협상 기술을 돋보이게 하고 그의 대통령 후보직에 정치적으로 요긴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는 이메일에서 “우리 친구가 미국 대통령이 될 수 있고, 우리는 그것을 만들 수 있다”며 “나는 이걸 얻으려고 푸틴 쪽에서 모든 것을 얻어낼 것이고, 그 과정을 관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착공식에 “푸틴을 참가시킬 것이고, 우리는 도널드를 당선시킬 것”이라고도 썼다. 세이터는 푸틴이 트럼프의 사업 수완을 칭찬하는 말을 하도록 주선할 것이라며 “만약 푸틴이 그렇게 말하면 우리는 이 선거를 이긴다. 미국의 가장 어려운 적이 도널드가 협상하기에 좋은 사람이라는 것에 동의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그는 트럼프타워 개발에 드는 재원에 대해서는 “러시아 VTB 은행으로부터 자금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세이터는 2006년에 트럼프의 딸 이방카가 모스크바를 여행했을 때 “이방카를 위해 크렘린의 푸틴 집무실 책상 의자에 앉을 수 있도록 주선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 이메일 내용을 보도한 <뉴욕 타임스>는 트럼프의 선거운동이 초반부터 모스크바와의 밀접한 관계를 정치적 이득으로 간주한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했고, 이는 현재 특검의 수사 대상이라고 전했다. 8살에 소련에서 이민온 세이터는 코언과 수년 동안 친분을 쌓았으며, 두 사람은 뉴욕 부동산업계에서 일을 해왔다. 세이터한테 편지를 받은 코언은 세이터의 언급들을 허풍이라고 간주했다며, 그 제안이 가능하지 않아서 러시아로의 여행에 동의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트럼프 쪽의 모스크바 프로젝트는 지난 대선에서도 논란이 됐으나, 트럼프는 러시아에 어떤 투자도 하지 않았다고 확인했다. 그러나 측근들이 푸틴 쪽에 접근한 것이 드러남으로써, 지난 대선 전부터 트럼프과 푸틴이 서로를 칭찬한 것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의심된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