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텍사스 휴스턴을 덮친 하비 대재난 현장을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9일 휴스턴 인근 도시 코퍼스크리스티의 소방서 앞에 모인 지지자들 앞에서 대선 때 선거운동용으로 팔던 모자를 쓰고는 텍사스 깃발을 흔들고 있다.
29일 허리케인 하비가 뿌린 폭우로 물에 잠긴 휴스턴 인근의 소도시 코퍼스크리스티의 소방서 앞.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유에스에이, 유에스에이, 유에스에이!”를 외치며 모인 수백명의 지지자들 앞에 섰다. 그는 자신의 대선 때 웹사이트에서 판매하던 40달러짜리 하얀 모자를 썼다. 모자 앞에는 ‘USA’가 새겨져 있다. 그는 “고맙습니다, 여러분. 나는 단지 이 말을 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당신들을 사랑합니다. 당신들은 특별합니다. 대단한 인파이고, 놀라운 참여입니다”라고 화답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휴스턴을 덮친 하비 대재난에도 자기 중심적인 정치로 일관하고 있다. 하비 대재난 이후 그의 반응은 수십만 이재민보다는 그 폭풍우의 위력과 행정부의 대응에만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하비가 텍사스를 강타한 지난 25일 밤 이후, 트럼프는 폭풍의 위력에 대한 놀라움과 이를 묘사하는 경탄하는 단어들로 일관했다. 그는 트위터에 “시속 125마일 바람!”, “기록적인 강우량”,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 “와우-지금 전문가들은 하비가 500년 만에 한 번 오는 홍수라고 말한다” 등의 글을 올렸다. 자연재해가 아니라 스포츠 경기나 액션영화를 묘사하는 것 같다고 <워싱턴 포스트>는 꼬집었다.
이 와중에서 그는 한 보수적인 보안관이 쓴 책을 선전하는 트위트를 올리는가 하면, 미주리주 방문을 발표하며 “내가 2016년 선거에서 많이 이겼다”고 자랑했다.
트럼프는 27일 기자회견에서 하비에 대해 묘사하는 ‘장대한’, ’역사적인’이라는 등의 단어를 신나게 말하며, 그 재난에 대응하는 자신의 역할로 관심을 거듭 돌리려 했다.
하지만 트럼프는 하비가 몰아치던 지난 주말 메릴랜드주 캠프데이비드 대통령 별장에서 보내던 휴가 일정을 중단하지는 않았다. 또 논란이 많은 조 아파지오 전 애리조나 보안관의 사면 발표 계획도 변경하지 않았다. 트럼프는 보안관 사면 뉴스를 묻혀버리게 하지 않으려 했다며, 하비 뉴스 때문에 “시청률이 보통 때보다도 훨씬 높았을 것으로 짐작했다”고 말했다. 뉴스 시청률이 높을 때 보안관 사면을 발표하는게 효과적이었다는 얘기다.
트럼프는 하비가 덮친 다음날인 26일부터 대중 앞에 나설 때는 대선 때 팔던 모자를 쓰고 나타났다. 그가 재난 위기를 이용해 자신의 정치적 이미지를 판다는 비판이 나왔다.
트럼프의 하비 재난 현장 방문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늦춰야 한다는 지적이 있었다. 대통령의 현장 방문은 여전히 계속되는 재난과 구호 작업에 차질을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트럼프는 이런 지적에 아랑곳 않고 “지금 텍사스로 떠난다”고 트위트를 날리고 현장을 향했다.
트럼프는 현장 상황 브리핑을 받은 코퍼스크리스티 소방서에서 연방재난관리청 청장인 브록 롱에 대해 “지난 며칠 동안 텔레비전에서 정말로 아주 유명해진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트럼프는 또 다른 방문지인 오스틴으로 떠나기 전에 소방서 앞에 모인 지지자들 앞에서 연설했다. 그는 소방차에 기댄 사다리에 올라갔고, 그의 옆에는 부인 멜라니아가 있었다. 마치 정치집회를 하는 것 같았다. 지지자들은 트럼프 깃발과 손팻말을 들고 있었다.
“역사적이고 엄청난 일이 일어났다고 나는 여러분에게 말한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이걸 아는가? 이게 텍사스에서 일어났고, 텍사스는 무엇이라도 감당할 수 있다.”
트럼프는 떠나기 전에 텍사스 깃발을 들고는 천천히 휘둘렀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