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12일 허리케인 어마가 닥친 카리브해의 프랑스령 생마르탱을 방문해 주민들을 위로하고 있다. 생마르탱/AFP 연합뉴스
허리케인 ‘어마’가 휩쓸고 간 카리브해 지역에 유럽 지도자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가 일찌감치 피난을 요청해 피해를 최소화한 미국과 달리, 유럽 정부의 대응이 미흡했다는 비난이 쏟아지는 가운데 민심 달래기에 나선 것이다. 15세기 말 시작된 유럽 국가들의 식민지 쟁탈전 전장이던 이 지역에는 아직도 독립국과 각국 영유지가 혼재해 있다. 어마의 습격으로 프랑스·네덜란드·영국령 주민 최소 23명이 사망한 것으로 집계됐다.
<비비시>(BBC) 방송은 12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어마로 최악의 피해를 겪은 생마르탱과 생바르텔레미 섬 등을 방문해 지원금 5000만유로(약 675억5250만원)를 약속했다고 보도했다. 그는 첫 도착지 과들루프섬에서 기자들에게 “정부의 최우선 과제는 섬 주민들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생마르탱 주민들을 만나선 “신속히 복구해 의료·교육·식수·에너지·통신 접근이 가능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빌럼 알렉산더르 네덜란드 국왕도 전날부터 네덜란드령 신트마르턴과 사바, 신트외스타티위스를 잇따라 방문했다. 네덜란드 적십자사는 프랑스령 생마르탱과 분점하고 있는 신트마르턴 섬에서 양쪽을 합쳐 200여명이 실종 상태라고 밝혔다. 이번 사태로 생마르탱-신트마르턴 섬 건물의 90%가 무너졌다. 알렉산더르 국왕은 “이번 피해 상황은 내가 본 것 중 최악”이라며 “수많은 전쟁 지역을 방문했지만 이처럼 황폐한 곳은 없었다”고 안타까워했다.
빌럼 알렉산더르 네덜란드 국왕(왼쪽 둘째)이 12일 카리브해의 자국령 신트마르턴에서 허리케인 ‘어마’의 피해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신트마르턴/EPA 연합뉴스
보리스 존슨 영국 외무장관은 자국령 버진아일랜드와 앵귈라를 찾아 복구 현황 파악에 나섰다. 이들 영국령 섬은 자치를 하고 있지만 자연재해에 대해선 영국 정부에 의존적이다. 특히 버진아일랜드 교도소에선 아수라장이 된 틈을 타 수감자 100여명이 탈출했고 일부는 여전히 행방이 묘연하다. 존슨 장관은 현재 배치된 1000명의 군인에 추가로 250명을 더 배치해 섬의 재건과 안전을 돕겠다고 밝혔다. 또 이미 지원을 약속한 구호기금 3200만파운드(약 480억4100만원) 외에도 추가 지원책을 마련할 계획을 내비쳤다. 그러나 이번 피해를 완전히 복구하기 위해선 앵귈라에서만 100억달러(약 11조2880억원)가량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카리브해 섬들은 열대의 낙원으로 불리며 미국과 유럽인들한테 사랑받았지만 주요 산업인 관광업은 쉽게 복구하기 어려운 타격을 입었다.
허리케인 어마가 휩쓸고 간 프랑스령 생마르탱의 거리가 황폐한 모습이다. 생마르탱/AFP 연합뉴스
치안 공백으로 인한 약탈과 강도 행각도 끊이지 않고 있다. <가디언>은 현지에선 유럽의 피해 복구를 위한 노력이 다소 느린 것을 두고 인종 차별적 행태라는 지적까지 나온다고 보도했다. <시엔엔>(CNN) 방송은 “유럽 지도자들이 현장을 방문해 재건을 약속하고 있지만 행정상 문제로 대응이 늦어지고 있다”며 “어마가 유럽의 곤란한 식민 통치 과거를 다시 상기시켰다”고 했다.
김미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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