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매너포트 미국 도널드 트럼프 선거 캠프 선대본부장이 지난해 7월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 퀵큰론즈아레나에서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클리블랜드/AP 연합뉴스
지난해 미국 대선 기간 당시 도널드 트럼프 캠프에서 선대본부장을 지낸 폴 매너포트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측근인 억만장자에게 선거 관련 브리핑을 제안한 정황이 포착됐다.
<워싱턴 포스트>는 20일 매너포트가 지난해 7월7일 중개인인 콘스탄틴 킬림니크를 통해 러시아 최대 알루미늄 업체인 루살의 올레크 데리파스카 회장에게 미국 대선 관련 브리핑을 해줄 수 있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공화당 대선 후보로 지명되기 2주도 채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이메일은 의도적으로 모호한 용어를 사용해 주요 사실을 숨기고 있으며, 데리파스카 회장을 이름 앞 글자인 ‘OVD’로 언급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러시아 유착 사건을 수사하는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는 제출받은 수만건의 이메일 중 이런 내용이 담긴 문건을 포착하고 수사 반경을 넓히고 있다. 데리파스카 회장이 이 제안에 응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매너포트는 지난해 3월부터 선대본부장을 맡았으나, 2014년까지 친러시아 성향인 빅토르 야누코비치 우크라이나 전 대통령과 그의 당을 돕는 로비를 하며 금품을 수수한 사실이 알려져 3개월 만에 사퇴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트럼프 대통령의 장남인 트럼프 주니어와 러시아 변호사의 만남에 동석하는 등 의문스러운 활동을 이어가 이번 사건의 핵심 인물로 분류됐다.
매너포트 쪽 대변인 제이슨 말로니는 “이메일에 언급된 브리핑은 하지 않았다. 그 이메일은 매너포트가 빚을 회수하기 위해 보낸 것”이라며 “매너포트가 과거 고객에게 받을 돈이 많다는 것은 비밀도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뮬러 특검팀의 목표는 매너포트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 주변을 샅샅이 훑는 것”이라며 “기소 카드로 압박하면서 대통령 측근에 대한 정보 조사에 협조할 것으로 촉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 <에이피>(AP) 통신은 뮬러 특검팀이 마이클 플린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제임스 코미 연방수사국(FBI) 국장의 해고와 관련된 각종 문서와 이메일 등 13개 항목을 백악관에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두 사람은 모두 러시아 유착 사건과 관련해 자리를 빼앗긴 인물로, 이들의 사임 과정을 통해 러시아와의 연결 고리를 찾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지난 5월 <뉴욕 타임스>는 트럼프 대통령이 코미 국장을 해고한 직후 백악관 집무실에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에게 “그는 미치광이였다. 이번 사건 때문에 받았던 엄청난 압박에서 자유로워졌다”고 말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한편 <뉴욕 타임스>는 매너포트가 오는 25일 독립 찬반 투표를 진행하는 이라크의 쿠르드 자치정부에 자문 역할을 해주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 국무부는 이번 투표에 반대 입장을 밝혔지만, 매너포트의 여전한 영향력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김미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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