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모 7.1의 지진으로 230명 이상이 숨진 멕시코 멕시코시티에서 구조대가 무너진 엔리케 레브사멘 초등학교 건물 잔해 사이에서 생존자 구조 작업을 벌이고 있다. 이 학교 학생인 12살 프리다 소피아가 잔해 사이로 생존을 알리면서, 많은 멕시코인들이 프리다의 구조를 간절히 기원하고 있다.멕시코시티/로이터 연합뉴스
오른쪽 주먹을 쥐고 팔을 올리면 현장은 일순간에 조용해진다. 자그마한 구조 요청까지 놓치지 않기 위해 모두가 소리와 공기 움직임에 집중한다. 누군가가 살아있다는 신호가 감지되면 땅속을 파고 들어간다. 그 모습이 마치 두더지 같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19일 규모 7.1의 강진으로 최소 230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멕시코 중부 피해 현장에서 민간 구호단체 ‘로스 토포스’의 활약이 빛을 발하고 있다고 20일 보도했다.
스페인어로 두더지란 뜻인 토포스의 역사는 198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6천명이 사망한 멕시코 대지진 당시 정부의 느린 대응에 맞서 자발적으로 발 벗고 나선 시민 모임이 그 시초다. 지진과 재난이 발생한 곳이라면 국경을 넘어 활약해왔다. 이란과 인도네시아, 2001년에는 미국 뉴욕 9·11테러 현장에도 파견돼 생명을 구했다. ‘아즈테카 토포스’와 ‘토포스 뜰랄뗄로꼬’ 등 4개 하부 조직으로 구성된 토포스는 삽과 망치, 도끼, 전기톱 등 간단한 장비와 구조견을 대동하고 출동한다. 각 조직당 40여명이 소속돼 있다.
규모 7.1의 강진으로 100명이 넘게 희생된 멕시코의 수도 멕시코시티에서 20일 시민들이 실종자의 이름이 적힌 종이를 들여다보고 있다. 멕시코시티/AFP 연합뉴스
알레한드로 멘데스(37)와 동료들은 19일 밤부터 이튿날 아침까지 멕시코시티 남부 코아파구의 무너진 건물 2곳에서 10명 이상의 생존자를 구했다. 주검 12구도 수습했다. 개를 풀어놓고 생존 신호를 탐색한 이들은 바닥과 건물 잔해 사이에 터널을 만들어 생존자를 수색하는 ‘두더지 기법’을 사용했다. 땅 사이를 파고 들어가며 생존자를 찾기 때문에 자그마한 몸집이 오히려 효율적이다. 오렌지색 작업복은 흙으로 뒤덮였다. 멘데스는 “건물이 무너지고 20분이 채 되지 않아 이곳에 왔다”며 “생후 한달 반이 된 여자 아기의 주검을 꺼내는 일은 큰 충격이지만 사람을 구하려면 강해져야 한다”고 했다.
대지진이 휩쓸고 간 현장에선 치열한 구조 작업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어린이들을 포함해 26명이 숨진 멕시코시티 남부 코아파구 엔리케 레브사멘 초등학교 현장에선 필사의 수색 작업이 벌어지고 있다. 건물 잔해 더미 틈으로 손가락을 내밀어 살아있다는 소식을 전한 12살 소녀 프리다 소피아 등 3명의 ‘희망의 아이콘’에게 온 국민의 관심이 쏠려있다. 이 학교에선 사고 발생 후 어린이 11명과 교사 1명이 구조됐지만 여전히 무너진 건물 아래 학생들이 깔려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건물 붕괴와 부상을 막기 위해 구조 작업이 더디게 진행되는 가운데, 비까지 내려 가족들의 애를 태웠다. 이 학교에서 구조 작업에 나선 토포스 소속 엑토르 멘데스(70)는 “32년 전 지진 현장에서도 며칠간 생존했던 신생아가 있었다”며 “아이들은 더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고 희망을 끈을 붙잡았다.
지난 19일 규모 7.1의 강진이 강타한 멕시코의 수도 멕시코시티의 한 건물이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무너져 있다. 멕시코시티/AFP 연합뉴스
참혹한 현장에서도 시민들의 자발적인 협력은 감동을 자아내고 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사회적 분열이 극심했던 멕시코시티에서 유대가 펼쳐지고 있다”고 묘사하며 “주민들이 한몸이 돼 인간 사슬을 만들고 구조 현장에서 잔해를 치우며 연장과 식품 등 구호품을 전달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미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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