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프로 미식축구단 ’클리블랜드 브라운스’의 선수들이 24일 인디애나폴리스 루카스 경기장에서 열린 ’인디애나폴리스 콜츠’와의 경기에 앞서 미국 국가가 연주되자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무릎을 꿇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국가에 존경을 표하지 않는 선수들을 해고하라고 촉구하자, 미식축구 선수 사이에서는 이에 대한 항의로 국가 연주 때 무릎을 꿇는 의식이 더욱 확산되고 있다. 인디애나폴리스/유에스에이 투데이 스포츠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국풋볼리그(NFL)을 향해 애국심이 없다며 비판 수위를 높이고, 이에 선수들은 물론 구단주까지 트럼프 대통령의 최근 ‘막말’에 대거 반발하고 나섰다. 양쪽의 싸움이 ‘애국심 대 인종차별’이라는 미국의 해묵은 ‘문화 전쟁’으로까지 번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2일 전국풋볼리그가 미국 국가 연주 도중에 항의하는 선수들을 해고해야 한다고 주장한데 이어, 24일에는 트위터를 통해 “미식축구 선수들이 국기와 국가에 대한 결례를 멈출 때까지 팬들이 경기에 가길 거부한다면 변화가 빠르게 일어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무례한 선수들을 “해고 또는 자격정지”해야 한다고 다시 주장했다.
그는 “미식축구 관람률과 시청률이 떨어지고 있다. 지루한 경기 탓이기도 하지만 많은 사람은 국가를 사랑하기 때문에 경기에 가지 않는다”며, 선수들의 애국심 부족 탓에 미식축구에 대한 관심이 떨어지고 있다고 호도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날 트위터는 그의 지지층을 향해 경기 관람 보이콧을 선동하는 것으로, 미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인 미식축구를 향해 ‘전면전’을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다.
연일 이어지는 트럼프의 막말에 이날 대거 경기가 열린 미식축구 경기장에서는 선수들의 항의가 오히려 확산됐다. 일부 언론은 24일을 ‘항의의 날’로 이름붙이기도 했다. 런던에서 시합한 ’볼티모어 레이번스’와 ’잭슨빌 재규어스’ 소속 선수들은 미국 국가가 연주되자 경기장에 무릎을 꿇고 팔짱을 꼈다. 피츠버그 스틸러스 선수단은 국가 연주 시간이 되어서도 대기실에 머물며 경기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에이피>(AP) 통신은 이날 열린 경기들에서 국가가 연주될 때 무릎을 꿇은 선수들이 모두 200명이 넘었다고 보도했다. 미국의 모든 미식축구 프로 선수들이 1696명인 것에 비춰보면, 선수 8명 가운데 1명이 항의에 가담한 것이다. 일부 선수들은 무릎을 꿇지는 않았지만 주먹쥔 손을 허공으로 치켜들어 트럼프 대통령에 항의 표시를 하기도 했다.
트럼프에 대한 항의에는 선수들뿐 아니라 구단들도 동참하고 있다. 이날 오전에만 전체 32개 구단의 절반 가까이가 성명을 내고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했다. 가수 스티비 원더도 23일 뉴욕 센트럴 파크 무대에 올라 공연하기 전 아들 콰메 모리스와 함께 무릎을 꿇며 저항에 동참했다고 <워싱턴 포스트>는 전했다. 스포츠계에 이어 음악계로까지 불길이 옮겨가고 있는 것이다.
‘무릎꿇기’는 지난해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의 쿼터백 콜린 캐퍼닉가 처음 시작했다. 캐퍼닉은 흑인 등 소수인종에 대한 경찰의 폭력에 대한 항의로 ‘무릎 꿇기’를 했으며 “흑인과 유색인종을 탄압하는 나라의 국가에 존경심을 표시할 수 없다”고 항거했다. 당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는 대조적으로 “캐퍼닉은 소신을 표출하고자 헌법상 기본권을 행사했다”며 옹호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자신의 집토끼인 백인들을 결집시키기 위한 다분히 의도적 ‘도발’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무릎을 꿇고 미국 국기나 국가를 존중하지 않는 것은 인종이나 다른 것과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주장했지만, 자신의 발언이 인종주의적 편견에 기초했다는 논란을 비켜가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yy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