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년간 지위를 이용해 배우와 직원들을 상대로 성범죄를 저지른 혐의가 드러난 할리우드 유명 영화 제작자 하비 웨인스타인(65)이 자신이 공동 설립한 웨인스타인 컴퍼니에서 8일 해고됐다. <뉴욕 타임스>가 그의 성추문을 폭로한 지 3일 만이다.
하비 웨인스타인의 동생인 로버트 웨인스타인, 랜스 메이로프 등 웨인스타인 컴퍼니 경영진은 이날 성명을 내고 “지난 며칠간 하비 웨인스타인이 저지른 행동에 대한 새로운 정보가 나와 그의 고용을 즉시 종료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하비 웨인스타인은 지난 6일 무기한 휴직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펄프 픽션>·<잉글리시 페이션트>·<굿 윌 헌팅>·<셰익스피어 인 러브>·<킹스 스피치> 등 유수의 작품을 기획한 웨인스타인은 1979년 제작사 미라맥스를 세울 때부터 자신의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여배우와 직원들에게 성폭력을 저질러온 것으로 밝혀졌다. 여성들을 호텔방으로 불러 마사지나 성행위를 요구해왔다고 한다. 1993년 미라맥스를 6000만달러(약 688억원)에 디즈니사에 넘기고 2005년 골드만삭스로부터 10억달러를 투자받아 자신의 이름을 딴 제작사를 만든 뒤에도 파렴치한 행각을 이어갔다.
피해 여성들 사이에선 그가 요구에 응해주면 고용 조건을 유리하게 해주겠다고 꾀었다는 진술도 나왔다. 피해자 중엔 <다이버전트> 등에 출연한 유명 배우 애슐리 쥬드(49)도 포함됐다. 쥬드는 20년 전 업무 협의를 위한 조찬 모임인 줄 알고 웨인스타인이 머무는 호텔을 찾았다가 마사지를 해달라거나 샤워 장면을 지켜봐달라는 요구를 받았다고 밝혔다. 배우 로즈 맥고완(44)은 지난해 10월 할리우드 유력 인사에게 성폭력을 당했다는 사실을 공개했으나, 이번에 그 상대가 웨인스타인이었음이 확인됐다. 맥고완은 트위터에 “할리우드의 여성들이여, 당신들의 침묵에 귀가 먹먹하다”며 추가 폭로를 촉구하기도 했다. 웨인스타인이 성폭력 문제로 여성들과 법률적 합의를 한 것으로 밝혀진 사례는 최소 8건이다. 웨인스타인은 기사가 나간 즉시 사과했으나, 다시 억울함을 호소하며 <뉴욕 타임스>를 고소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피해 여성 중 한 명인 배우 애슐리 주드가 2014년 3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웨스트우드 리젠시 빌리지 극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AP 연합뉴스
그가 지난 미국 대선 당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를 공개 지지하고, 페미니즘 등 진보적 사안에 앞장서왔던 점은 충격을 키웠다. 웨인스타인 사태를 통해 할리우드에 만연한 성폭력도 다시 조명되고 있다. 영화와 티브이 시리즈물을 제작하는 에이치비오(HBO)사의 책임프로듀서 제니퍼 코너는 “우리가 되돌아보고 말하기 시작한 순간이다. 모두 변화하기 시작했다”며 “할리우드의 어떤 남자도 영화나 티브이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을 두려워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어벤져스> 등에 출연한 유명 배우 마크 러팔로도 트위터에 “권력을 역겹게 남용하고 끔찍한 일을 했다는 것을 명확히 밝혀야 한다”며 “이런 학대의 종말이 시작됐다는 것을 보고 싶다”는 글을 남겼다.
김미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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