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5일 인디애나주 인디애나폴리스 공항에 도착한 주먹을 쥐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핵협정(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을 불인증하고 공을 의회로 넘기면서 이란 핵협정을 둘러싼 공방은 제2라운드로 접어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13일(현지시각) 백악관에서 대 이란전략을 발표하면서 “우리는 (이란 핵협정을) 인증할 수 없으며 인증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는 “더 많은 폭력과 테러, 그리고 이란의 ‘브레이크 아웃’이라는 실질적인 위협이 예측가능한 길을 계속 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브레이크아웃’은 특정 국가가 핵무기 제조를 결심한 뒤 ‘무기급 핵물질’을 확보하는 것을 지칭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정권이 핵무기로 세계를 결코 협박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며 “이런 이유로 의회 및 동맹과 긴밀히 협력해 협정의 많은 심각한 결함들을 해소할 것을 행정부에 지시한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협정의 결함으로 이른바 ‘일몰 조항’과 불충분한 집행, 이란의 미사일 프로그램에 대한 침묵 등을 꼽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이란 핵협정을 파기하는 대신, 의회로 공을 떠넘기는 꼼수를 선택했다. 지지층에는 자신이 이란 핵협정에 비판적이라는 것을 정치적으로 과시하면서, 의회가 핵협정 수정안을 도출하지 못할 경우 이에 대한 책임을 의회에 떠넘기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의 이날 결정은 행정부 안에서 이란 핵협정 파기를 둘러싼 강온파들의 일정의 절충안 성격을 띠고 있다. <뉴욕 타임스>는 내부 논의 과정을 잘아는 고위 관료의 말을 인용해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과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은 이란 핵협정을 유지하는 것이 미국의 국가안보이익이라고 주장했다”고 전했다. 신문은 “시간이 흐를수록 두 사람은 트럼프 대통령이 즉각적으로 협정을 폐기하지 않도록 설득하는데 성공했다”고 전했다.
의회는 앞으로 이란 핵협정에 대해 60일 안에 제재 재개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2015년 7월 이란과 서방 6개국의 이란 핵협정 타결 이후 제정된 코커-카딘법(이란 핵합의 검증법안·INARA)에 따라 미 행정부는 이란이 핵협정을 제대로 준수하는지를 90일 마다 인증해 의회에 제출해야 한다. 의회는 이를 근거로 대 이란 제재 연장 여부를 결정한다.
하지만, 의회에서 제재 연장 여부를 결정하거나 코커-카딘법을 수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요구하는대로, 2030년에 자동으로 이란의 핵 프로그램에 대한 주요 제한을 해제한는 ‘일몰 조항’을 영구히 삭제할 경우 이는 시실상 합의 파기를 의미하는 것이다.
우선, 이란을 비롯해 핵협상에 참여한 미국을 제외한 5개국이 이를 합의해줄 리가 없다. 영국, 독일, 러시아, 중국, 독일 등 5개국은 이란이 핵협정을 잘 준수해왔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이란 핵협정 무력화를 거세게 비난해왔다.
또한 미 의회내에서도 수정안이 통과되려면 상원의원 100명 가운데 60명의 찬성을 얻어야 하는데, 공화당 의원은 52석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치적을 지우려는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해온 민주당은 말할 것도 없고, 공화당 내에서도 존 매케인 상원의원 등은 이란 핵협정 파기에 부정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란 핵협정 파기는 북한에 대해서도 잘못된 신호를 보낸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북-미간 협상을 맺어도 언제든 뒤집힐 수 있다는 인식을 북한에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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