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격화되는 마약성 진통제 남용 위기에 대처하는 전권을 부여받는 ‘약품 차르’로 지명된 톰 마리노 공화당 의원이 제약회사의 로비에 따라 마약성 진통제 처방을 쉽게 하는 관련 법을 제정했다는 스캔들이 폭로됐다.
미국이 마약성 진통제 남용과 관련해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6일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마약성 진통제 남용에 대처기 위해 국가비상사태를 다음주에 선포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는 마약성 진통제 남용 사태 해결을 위한 전권이 부여된 이른바 ‘약품 차르’인 국가약품통제정책실 실장 지명자 톰 마리노 공화당 하원의원이 제약회사들의 로비를 받고 관련 법을 만들어 줬다는 스캔들까지 터지자 이같은 방침을 밝혔다.
대통령이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하면, 행정부는 마약성 진통제 남용 대응을 제한하는 관료적 절차나 연방정부의 규정 등을 통하지 않고 조처를 취할 수 있게 된다.
최근 미국에선 합법적 진통제부터 헤로인까지를 포함한 합성 진통마취제(오피오드) 남용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 2015년에 3만3천명의 사망자를 내는 등 피해가 급격히 늘고 있다. 1980년대의 에이즈 확산 이후 최대의 보건 위기로 지목되는 마약성 진통제 남용 사태가 지금 추세대로 계속되면 향후 10년 동안 약 50만명의 사망자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에서는 단순한 관절 진통이나 발치 진통에도 강력한 마약성 진통제를 무분별하게 처방해 큰 사회적 문제로 대두됐다. 유통과 처방을 용이하게 한 제약회사들의 로비와 부패한 의사들의 공모 때문이라는 비판이 일었다.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마약성 진통제는 중독성이 높아 마약 대용으로 확산되고 있다. 특히 농촌이나 쇠락한 산업지대에서 남용이 심각하고, 청소년들에게도 처방되고 있다. 마약성 진통제는 2015년에 미국 전역에서 2억5천만건이 처방되면서 약 100억달러의 시장으로 성장했다.
비판 여론이 커지자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마리노 의원을 이 사태에 대처하는 전권을 쥔 ‘약품 차르’로 임명했다. 하지만 <워싱턴 포스트>와 <시비에스>(CBS) ‘60분’의 공동 탐사보도는 그와 마샤 블랙번 공화당 의원이 의심스런 진통제 출하를 동결할 수 있는 정부기관 권한을 박탈하는 등 제약 관련 규제 완화 법을 추진했다는 스캔들을 폭로했다.
두 의원의 지역구인 펜실베이니아와 테네시는 마약성 진통제의 폐해가 심각한 비도시 지역을 안고 있다. 블랙번은 제약회사들로부터 12만달러를 선거운동자금으로 기부받기도 했다.
트럼프는 이런 스캔들에 대해 “조사해 볼 것”이라고 말해, 마리노의 임명이 취소될 수 있음도 시사했다. 트럼프는 언론 보도에 대해 마리노와 아직 얘기해보지 않았으나, 마리노의 행적이 마약성 진통제 중독에 맞서려는 행정부의 목적에 해가 된다고 판단되면 “바꿀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는 “솔직히 이 나라와 세계에는 약물 문제가 있다. 우리는 무언가 할 것이다. 아마 다음주에 큰 발표가 있을 것”이라며 국가비상사태 선포를 예고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