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쩐다이꽝 베트남 국가주석이 12일 하노이의 주석궁에서 정상을 하기 앞서 호치민의 동상 앞에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하노이/AP 연합뉴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신 아시아 전략’이라고 할 수 있는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구상의 윤곽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아펙) 정상회의를 통해 조금 드러났다. 하지만 아직은 ‘양자 무역협정’, ‘테러리즘 척결’ 등 트럼프 대통령의 국내 정치 의제를 끼워넣은 성격이 강한 초기 형태의 구상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0일(현지시각) 베트남 다낭에서 열린 아펙 정상회의의 ‘시이오 서밋’ 연설에서 인도-태평양 정책의 내용을 경제와 안보 분야로 나눠 설명했다.
첫째, 경제 분야에선 미국은 인도-태평양 국가들과 앞으로는 ‘손해 보지 않는’ 양자 무역관계를 체결하겠다고 선포했다. 미국과 인도-태평양의 ‘역사적 인연’을 언급한 앞부분을 제외하면 연설의 거의 전부를 무역 문제에 할애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을 비롯해 중국, 일본, 인도, 말레이시아, 타이 등이 짧은 기간에 얼마나 경제적으로 번영해왔는지에 대해 칭찬을 한 뒤, 이는 미국의 무역 적자에 기반한 것임을 직설적으로 비판했다. 그는 “(미국의) 만성적인 무역 적자를 더이상 용인할 수 없다”며 “인도-태평양의 모든 국가와 공정함과 상호성의 원칙에 기반한 견고한 무역관계를 추구하고자 한다”고 선언했다.
그는 이를 위해 “미국의 파트너가 되고 싶어하며, 공정하고 상호적인 무역을 준수하려는 인도-태평양의 어떤 국가와도 양자 무역협정을 맺을 것”이라고 밝혔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때 체결했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티피피)과 같은 다자협정 대신, 미국이 유리한 고지에서 협상할 수 있는 양자협정을 체결하겠다는 뜻이다. 그는 특히 “경제안보는 단순히 국가안보와 연결돼 있는 것이 아니라 경제안보가 곧 국가안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둘째, 안보 분야에선 트럼프 대통령은 서울에서의 국회연설을 상기시키며 “이 지역의 미래와 아름다운 사람들이 독재자(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환상의 인질이 되서는 안 된다”며 북핵 문제를 짧게 지적했다. 또한 △법의 지배, 개인권리, 항행이나 비행의 자유에 대한 존중 △범죄 카르텔이나 마약, 부패에 대한 단호한 대처 △테러리스트와 극단주의자 추방 등을 나열하는 데 그쳤다.
<파이낸설 타임스>는 11일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을 두고 “인도-태평양 정책을 어떻게 이행하겠다는 것인지,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아시아 회귀’ 정책과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 구체적인 것을 보여주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뉴욕 타임스>도 북한 핵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세계가 미국 뒤에 결집할 것을 주장한 반면 통상 문제에 대해서는 나 홀로 길을 갈 것이라는 메시지를 냈다며 “이는 아주 모순된 요구”라고 평가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 ‘인도-태평양’ 전략의 관건은,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에 대한 장기적 견제 차원에서 미국-일본-인도-오스트레일리아를 묶는 ‘4자 전략대화’를 어느 정도 수준과 깊이로 추진하는지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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