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7일 백악관에서 원주민 나바호족 출신 ‘코드 토커스’ 참전 용사들과 만나 기념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워싱턴/UPI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7일 백악관에서 열린 원주민 참전용사 만남 행사에서 민주당의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을 ‘포카혼타스’라고 불러 인종차별 논란이 불거졌다. <워싱턴 포스트>를 보면, 이날 오후 트럼프 대통령은 참전용사들을 만나 이들의 공로를 치하했다. 행사에 참석한 참전용사들은 미국 남서부 지역 원주민 나바호족 출신 통신병들인 ‘코드 토커스’였다. 이들은 2차대전 당시 부족어를 군사용 암호로 사용하면서 첩보전에서 승리하는 데 기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당신들은 우리 중 누구보다 오래 이곳(미국 대륙)에 있었다. 우리 의회의 한 대표도 이곳에 오래전부터 있었다고 한다. 그는 포카혼타스라 불린다”고 말했다.
포카혼타스는 17세기 실존 인물이다. 원주민 추장의 딸로 영국인들에게 붙잡혀 개종하고 영국인과 결혼한 여성이다. 그간 트럼프 대통령은 사사건건 자신의 언행을 지적해 ‘트럼프 저격수’로 불려온 워런 의원을 두고 원주민 혼혈이란 점을 들어 포카혼타스라고 비아냥댔는데 이날 또다시 얘기를 꺼낸 것이다. <워싱턴 포스트>는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그저 미소로 침묵을 지킬 뿐이었다면서 “이 장면 뒤편엔 앤드류 잭슨 전 대통령의 초상화가 걸려있었다. 그는 인디언 추방법에 서명한 인물”이라며 사려가 부족했던 백악관도 함께 비판했다.
미국 원주민 나바호족의 참전용사 피터 맥도날드가 27일 백악관에서 열린 행사 중 발언하고 있다. 뒤편엔 인디언 추방법에 서명한 앤드류 잭슨 미국 7대 대통령 초상화가 보인다. 워싱턴/EPA 연합뉴스
마이하이오 마누스 나바호족 대변인은 논란이 확대되자 “트럼프 대통령이 워런 의원을 두고 포카혼타스라고 농담을 한 것은 불행한 일”이라며 “포카혼타스가 나바호족은 아니지만 분명히 그는 이 땅을 일군 역사적 인물이다. 어떤 부족의 일원도 농담거리로 이용돼선 안 된다”고 밝혔다. 워런 의원도 즉시 반발했다. 그는 “이 행사는 전쟁 영웅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행사여야 했다”며 “그는 인종차별적 발언 없이 이 행사를 제대로 마칠 수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파장이 커지자 세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대통령의 의도적인 발언이 아니었다”, “대부분 사람들이 워런이 자신의 경력을 키우기 위해 유산에 대해 거짓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오히려 워런 의원에게 화살을 돌렸다. 원주민 연구자인 스테파니 프라이버그 워싱턴대 부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은 노병에게 존경심을 표하기보다 그들을 이용해 워런 의원에 대한 모욕적 발언을 했다”며 “존경 받을 만한 사람들을 존중할 수 없다면 왜 백악관은 그들을 초대했는가”라고 질타했다.
김미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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