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9일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와 관련해 오전 6시 국가안전보장회의 전체회의를 소집해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연합뉴스
북한이 29일 새벽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아이시비엠)로 추정되는 장거리미사일을 발사하면서 한반도 정세는 다시 ‘시계 제로’ 상태로 빠져들었다. 극적 돌파구가 없는 한 긴장이 계속되거나 고조될 수 있다는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북한이 장거리탄도미사일 발사는 지난 9월15일 중거리탄도미사일(IRBM)인 ‘화성12호’ 발사 이후 75일 만으로, 이른바 ‘자제 기간’을 끝내고 ‘강 대 강’ 대결을 통해 북미 간 교착 국면을 탈피하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한 것으로 풀이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이달 초 아시아 순방과 이어진 시진핑 중국 주석의 특사인 쑹타오 중국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의 방북을 통해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하면서, 북한의 추가 긴장 고조 행위 가능성은 일찌감치 예견돼왔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은 쑹 특사가 김정은 북한 노동당위원장을 면담하지 못하자, 9년 만에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했다. 렉스 틸러슨 장관이 북한과의 ‘비공식 대화’ 가능성을 언급하며 분위기를 바꾸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단기적으로는 북-미 간 힘 대결 양상은 더욱 거칠어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미국의 대북 접근 방식을 바꿀 의사가 없다고 밝혔다. 경제적 제재, 외교적 고립, 무력시위를 3축으로 하는 현재의 ‘최대의 압박’ 정책을 계속 고수하겠다는 뜻이다.
우선, 경제 제재와 관련해 그동안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기조에 비춰볼 때,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에 원유 등 유류 제품의 수출 차단이나 대폭 축소 등을 요구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9일 시 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유류 수출 축소를 요구했지만, 시 주석은 핵실험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와 같은 ‘전략적 도발’ 상황이 아니라면 수용하기 어렵다는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의 중국 특사 면담 거부로 체면이 손상된 중국도 대북 제재 문제와 관련해서는 미국에 협조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고 소식통들은 전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의 중국 방문 과정에서 제도적·구조적 통상 이슈에 대해서는 중국으로부터 양보를 받아낸 것이 없다는 기류가 백악관 및 전문가들 사이에서 확산되면서, 북한 문제와 관련해서라도 중국을 더욱 압박하려는 분위기가 적지 않다. 한 소식통은 “미-중 갈등을 막기 위해서라도 중국이 더욱 협조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미국의 무력시위 횟수나 강도도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은 지난 9월15일 북한의 중거리탄도미사일 발사 이후 전략폭격기 B-1B 랜서가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비행하게 했고, 핵항공모함 3척이 연합훈련을 하는 등 첨단 전략자산을 동원해 북한을 압박해왔다. 아울러 동남아시아나 아프리카 국가들에 외교 관계 단절이나 외교관 추방 등을 더욱 강하게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구조적으로도 북-미 간 요구의 간격이 워낙 커, 단기간에 접점을 마련하기는 쉽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행정부가 대북 요구 사항을 구체적이고 분명하게 밝히지는 않지만,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은 ‘대화의 전제 조건’으로 △핵·미사일 시험 중지 △개발 중지 △수출 금지 세 가지를 꼽은 바 있다. 여기에 북한의 비핵화 의지 표시 및 성의 있는 행동 등이 기본 전제 조건으로 들어가 있다.
이에 비해, 북한은 반민반관 대화 등을 통해 비핵화 문제는 협상 테이블에 올릴 수 없으며, 한-미 연합훈련 중단 혹은 축소, 대북 제재 해제와 트럼프 대통령의 자극적 발언 중지 등을 협상 의제로 올릴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 가운데 핵심적인 북한의 요구는 ‘한-미 연합훈련 중단 혹은 축소’라고 지난달 모스크바 비확산회의에 참석했던 한 전문가는 전했다. 종합하면, 북-미 간 요구가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는 것이다.
하지만 긴장 고조에 따른 우발적 충돌 가능성을 피한다면 일정한 냉각기를 거쳐 최소한 ‘탐색적 대화’를 시도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한국 정부는 내년 2월 평창올림픽을 앞두고 긴장을 관리해야 할 절박한 처지에 있다. 중국 역시 시진핑 주석의 권력 기반 강화 이후 북핵 문제 해결의 주도권을 되찾기 위한 논의가 활발하다.
미국 역시 내년 초부터 11월 중간선거 체제로 돌입한다.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사실상의 중간평가 성격을 띠는 중간선거를 앞두고 긴장이 고조될수록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특히 북한의 이번 장거리탄도미사일이 미국 동부까지 도달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트럼프 행정부가 더 이상 북핵 문제를 ‘버락 오바마 대통령 탓’으로만 돌리기는 어려워 보인다.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yy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