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 산하 ‘제임스 주진 김 한국학 프로그램‘(소장 유진 Y. 박 교수) 주최로 1일(현지시각)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이 대학에서 열린 “동북아 평화를 위한 시민참여와 국가정책’ 주제의 국제심포지엄에서 참석자들이 토론을 벌이고 있다.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 능력 고도화, 여전히 미완의 해결로 남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 국제주의 쇠퇴와 국가주의의 부활 등 ‘평화와 협력을 위한’ 동북아시아의 미래는 흐릿하다. 이런 가운데, 한·미·일 등에서 평화운동을 벌여온 대표적인 시민사회 활동가들이 모여 동북아의 미래를 논의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 산하 ‘제임스 주진 김 한국학 프로그램‘ 주최로 1일(현지시각)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이 대학에서 열린 “동북아 평화를 위한 시민참여와 국가정책’ 주제의 국제심포지엄에서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는 “무조건적인 북한과 일본의 관계정상화”를 제안했다.
와다 명예교수는 이날 발표에서 “북-일 관계정상화로 중국이 제안한 이른바 ‘쌍중단’(북한의 핵·미사일 실험과 한-미의 대규모 군사훈련 동시 중단)을 보완한다면, 북한을 둘러싼 상황에 실질적인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와다 교수는 북-일 관계정상화 모델로,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쿠바 모델’을 제시했다. 그는 ‘오바마 모델’을 “일단 외교관계를 열어 대사관을 세우며, 그 다음에 실질적 협상과 경제제재를 점진적으로 무효화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이런 관점에서 북-일이 평양과 도쿄에 대사관을 먼저 세우고, △경제 협력 △북핵 및 탄도미사일 프로그램 △납치문제 등 세가지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자고 밝혔다. ‘북-일 수교’라는 출구를, 입구에 내세우는 발상의 전환을 하자고 촉구하는 것이다.
존 페퍼 미국 외교정책포커스 소장은 “동북아 역내 모든 국가들이 동의할 수 있는 직면한 위협은 기후변화”라며, 일단 안보가 아닌 다른 이슈들에서 논의를 시작하자고 제안했다. 특히, 페퍼 소장은 트럼프 행정부가 ‘파리 기후변화협약’에서 탈퇴하겠다고 했지만, “(북한을 포함해) 모든 서명국가들은 탄소배출을 감축하겠다는 자발적인 약속을 해왔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동북아 내에서 환경협력에 따른 결과들이 안보 등 다른 영역으로 확산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소식 영어권 전문매체인 <엑스포제>의 구세웅 대표는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미국 내에서 ‘한국 피로증’이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뉴욕 타임스>에 위안부 문제에 관한 한국의 일반적인 관점에 관한 기고를 하려고 했을 때 ‘전에 했던 얘기 아니냐’며 무관심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이 얘기하는 일본의 진정한 사과도 국제사회에 거의 반향이 없다”며 “프레임을 바꿔야 할 때가 됐다”고 밝혔다. 그는 “한국 진보진영에서 베트남 전쟁 때 한국군의 잔혹한 행위를 조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며 “국경을 넘어 여성에 대한 남성의 폭력이라는 국제적 문제의 하나로 위안부 문제를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아베 신조 일본 정부의 평화헌법 흔들기를 비판해온 대표적 진보진영 학자인 나카노 고이치 조치대 교수는 “일본에서 아베에 대한 비판을 반일로 보는 시각이 확산되고 있다”며 일본 내 상황을 우려했다.
나카노 교수는 “일본의 우경화가 깊어지면서 한국 및 중국과의 우정을 얘기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며 “일본 우경화는 아베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고 가속화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일본의 우경화는 “평범한 일본인이 아니라 엘리트들이 주도하는 것”을 주요 특징으로 꼽았다. 그는 일본 우경화의 대외적 요인으로 미국을 꼽은 뒤 ”집단적 자위권, 역사 수정주의 등에서 미국이 일본의 우경화를 묵인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나카노 교수는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반자유주의적인 충동을 공유하고 있다”며 “‘미국 우선주의’는 국제주의와 반대되는 것으로 아베의 “일본을 되찾자”는 구호와 닮아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의미에서 “국가정체성 정치를 뛰어넘어야 하고, 국수주의에 너무 집착해서는 안된다”며 “초국가적인 시민사회연합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장희 한국외대 명예교수도 “지속적인 평화로운 동북아를 구축하기 위해선 아시아 문화 정체성에 기초한 보편적 규범과 가치를 확립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며 “각국의 국가적 이해에 대한 이기심에만 의존한다면 이러한 임무는 결코 실현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날 학술회의에는 김영호 동북아 평화재단 이사장, 이태진 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알렉시스 더든 코네티컷 대학 교수 등도 참석했다. 이들은 1951 년 9 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일본과 연합국 48 개국 사이에 체결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동아시아 국제질서에 미친 부정적인 영향에 대해서도 열띤 토론을 벌였다.
한국학 프로그램 소장인 이 대학 유진 Y. 박 교수는 “난징대학살, 일본군 위안부, 일제 강제동원과 징용, 역사 교과서 문제, 영토 분쟁, 남북분단 등 현재까지 동북아의 평화를 위협하고 있는 샌프란시스코 체제의 어두운 유산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나아가 유럽연합과 같은 평화공동체를 동북아에 정착시키기 위한 시민사회의 역할을 촉구하는 데에 이번 국제학술회의의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필라델피아/글·사진 이용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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