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지난달 29일 ‘화성-15형’ 미사일을 발사하고 있다. 평양/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 15호형’ 발사 이후 미국 내 분위기가 급랭하고 있다. 북한의 6차 핵실험 이후 군사 옵션이 거론되고 정세 불확성이 크게 높아졌던 지난 9월의 ‘데자뷔’ 같은 상황이 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 사정을 잘 아는 소식통은 3일(현지시각) “미국 행정부 안에서도 ‘선제타격’이 심심찮게 거론될 정도”라며 내부 분위기가 악화됐다고 전했다. 북한의 장거리미사일이 이론적으로는 워싱턴에 도달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오면서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허버트 맥매스터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지난 2일 캘리포니아에서 열린 ‘레이건 국방 포럼’에서 “북한과의 전쟁 가능성이 매일 증가하고 있다”며 긴장을 끌어올렸다. 그는 “무력 충돌에 이르지 않고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들이 있지만 시간이 많이 남아있지 않다”고 덧붙였다. 다만 그는 구체적인 군사 옵션과 관련해 서울을 겨냥한 북한의 재래식 방사포와 로켓을 고려하면 “위험이 없는 군사행동 방법은 없다”고 인정했다.
맥매스터 보좌관은 4일 <폭스 뉴스> ‘선데이’ 프로그램에 나와서도 북핵 문제는 “(중국과 러시아에) 직접적인 위협일 뿐만 아니라, 일본이나 한국 및 다른 국가들이 자체적으로 핵무장할 가능성이라는 위협을 제기한다”고 말했다. 북핵 문제를 방치하면 중국이 가장 예민하게 여기는 한·일·대만의 자체 핵무장을 용인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져, 중국한테 대북 유류 제품 공급의 축소와 해상 차단 동참을 이끌어내기 위한 압박으로 풀이된다.
그는 북한의 핵무기를 인정할 수 없는 이유로 “북한의 의도는 핵무기를 핵 협박으로 사용해 붉은 깃발 아래로 한반도를 ‘통일하기’ 위한 것”이라며 “북한 정권 아래서의 삶이 어떠할지 알고 싶다면 지금 38선 북쪽을 보면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북핵 문제의 또 하나의 중대한 위협은 “김정은이 이러한 무기들을 다른 나라에 확산시키거나 파는 것”이라며, “북한은 자기가 개발한 무기 시스템을 다른 누군가에 팔지 않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비핵화뿐 아니라 비확산으로도 무게 중심을 상당히 옮아가고 있음을 시사한다.
미국 공화당 중진인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은 3일 <시비에스>(CBS) 방송 인터뷰에서 대북 선제공격 가능성을 의회에서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며, “북한의 도발을 가정한다면 한국에 배우자와 아이를 동반해 미군을 보내는 것은 미친 짓”이라고 주장했다. ‘선제공격’은 그레이엄 의원의 평소 지론이긴 하지만, ‘미군 가족 동반 금지’는 상당히 자극적인 선동이어서 미국 여론을 악화시킬 수 있다.
다만 트럼프 행정부가 세제 개혁 문제, 러시아 스캔들 등으로 외교 정책에 대한 집중도가 떨어져 있고, 국제기구 등이 한반도 긴장 완화를 위한 행보를 조만간 시작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있어, 최악의 상황으로 빠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런 가운데 인터넷 매체 <악시오스>는 3일 “트럼프 행정부의 새 국가안보전략 초안이 거이 완성돼 곧 나올 예정이고, 이번주 내각 회의에서 검토할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도 새 전략의 핵심 요소들을 승인했다”고 보도했다. 새 전략은 본토 보호, 중국과 관련한 경제적 경쟁력 제고, 기술적 위협의 출현 등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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