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바스티안 피녜라 전 칠레 대통령(오른쪽)이 17일 수도 산티아고에서 대선 승리 수락 연설을 한 뒤 아내 세실리아 모렐과 손을 잡고 시민들을 향해 감사 인사를 하고 있다. 산티아고/신화 연합뉴스
억만장자 기업가 출신인 세바스티안 피녜라(68) 전 칠레 대통령이 17일 대선 결선투표에서 승리해 4년 만에 재집권에 성공했다. 1990년대 말부터 20여년간 온건좌파 물결, 이른바 ‘핑크 타이드’가 장악한 남미 지역에서 경제난에 대한 반발로 우경화가 가속화되는 모습이다.
<로이터> 통신은 우파 야당 ‘칠레 바모스’(칠레여 갑시다) 후보로 출마한 피녜라 전 대통령이 득표율 54.58%로 제38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고 보도했다. 중도 좌파 여당 연합인 ‘누에바 마요리아’(새로운 다수) 후보 알레한드로 기예르 상원의원은 45.42%를 얻었다. 피녜라 전 대통령은 지난달 19일 1차 투표에서 36.64%로 1위에 올랐으나 과반 득표에 실패해 결선투표를 치렀다. 내년 3월11일에 취임하는 그는 승리 수락 연설에서 “겸손한 마음과 희망을 가지고 이 승리를 받아들인다”고 밝혔다.
2010~2014년 집권한 피녜라 전 대통령은 헌법의 연임 금지 규정에 따라 지난 선거에 출마하지 못했다가 이번에 다시 대통령직에 도전했다. 같은 이유로 사회당 출신인 미첼 바첼레트 현 대통령은 출마하지 못하고 기예르 의원을 지원했다.
세계 최대 구리 생산국인 칠레는 구리 가격 하락으로 경제 사정이 안 좋다. 최근 경제성장률은 2% 미만으로, 특히 최대 수입국인 중국의 구리 소비량 감소에 직격탄을 맞았다. 피녜라 전 대통령은 선거 기간 내내 이 부분을 집중 공략하면서 법인세 삭감으로 경제를 회복시키겠다고 주장했다. 또 바첼레트 현 대통령의 노동 개혁 정책을 되돌리겠다고 강조했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그는 1970년대 신용카드 회사인 반코를 세우면서 칠레를 대표하는 기업인으로 이름을 올렸다. 경제학 교수이기도 하다. 지난 임기 때 재산 일부를 처분했으나, <포브스>는 그의 재산이 여전히 27억달러(약 2조9390억원)나 된다고 추산했다. 이런 배경 때문에 기업가 출신으로 극우 전략을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빗대 ‘칠레의 트럼프’라는 별명도 붙었다.
2015년 말 남미에 닥친 우파의 공습으로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파라과이 등에서 보수 정당이 잇따라 정권 교체에 성공해 정치 지형이 급변하고 있다. 베네수엘라의 좌파 니콜라스 마두로 정부는 최악의 경제난 앞에서 독재 정권이란 비난을 받으며 퇴진 압박을 받고 있다. 지난달 26일 대선을 치른 온두라스에서도 부정 선거 의혹이 불거진 가운데 법원이 이날 올란도 에르난데스 현 대통령의 승리를 공식 선언했다. 에르난데스 대통령도 우파 성향의 기업가 출신이다. 국제 선거 참관단인 미주기구(OAS)는 이날 온두라스에 대선을 다시 치러야 한다고 촉구했다. <뉴욕 타임스>는 내년에 치러질 콜롬비아, 브라질, 파라과이, 멕시코 대선에 칠레 대선 결과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김미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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