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실전에서 더 쉽게 쓸 수 있는 ‘저강도 핵무기’를 늘리는 전략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허프 포스트>와 <에이피>(AP) 통신 등이 13일 입수해 공개한 미 국방부의 ‘핵 태세 검토보고서’(NPR) 초안을 보면, 트럼프 행정부는 러시아와 중국, 북한의 핵 위협 등을 거론하면서 미국의 핵무기 보유 확대 필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실전에서 더욱 쉽게 쓸 수 있는 ‘저강도 핵무기’ 보유 확대를 주문해 ‘더 쉬운 핵전쟁’ 가능성을 높였다.
보고서는 첫 부분에서 러시아와 중국의 핵무기 현대화와 확대, 북한의 핵 도발 위험성, 국제적 핵 합의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이란의 핵 개발 야망을 지적했다. 이어 “잠재적 적들은 (미국이) 핵을 사용하는 것은 제한돼 있기 때문에 미국과 동맹에 대해 우위를 가질 수 있다는 잘못된 확신을 하고 있다”며 저강도 핵무기를 비롯한 ‘보충적인 수단’(supplement)이 미국의 억지력을 높여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너무 크고 치명적인 핵무기만 보유하는 것은 ‘자기 억제’(self-deterrence)의 형태가 된다”며 핵무기를 실제로 사용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임을 지적한 뒤 “저강도 핵탄두는 다른 나라에 (미국이) 실제로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보장한다”고 말했다.
보고서는 이와 관련해 구체적으로 2단계 방안을 제안했다. 먼저 단기적으로는 트라이던트 전략 잠수함에서 운용해온 장거리 탄도미사일(SLBM) 중 소수를 저강도 핵탄두를 장착하도록 개조하고, 장기적으로는 냉전 시대에 운용하다 오바마 정부 시절인 2011년 퇴역시켰던 무기를 재건하는 방식으로 핵 탑재 해상 발사 순항미사일(SLCM)을 개발할 것을 제안했다. 보고서는 이들 해상 발사 ‘저강도 핵무기’ 탑재 미사일은 배치국의 동의를 받지 않아도 된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저강도 핵무기’가 미국 대통령이 핵무기 사용 결정을 더 쉽게 내리게 할 것으로 우려한다. 또 ‘저강도’라는 표현에도 불구하고 실제 파괴력은 나가사키나 히로시마에 투하된 핵폭탄과 맞먹는 정도라고 <허프 포스트>는 보도했다.
미국은 냉전 시대부터 적국에 대해 ‘핵 선제 사용 능력’을 확보한다는 전략을 유지해왔지만, 냉전 이후에는 핵무기 축소 방침을 강조해왔다. 오바마 행정부는, 실천하지는 않았지만 “핵무기 없는 세상” 추구를 약속하기도 했다. 트럼프 정부의 핵 보고서는 미국 국방정책에서 핵 전력의 역할을 줄이려는 선례들을 중단하고 뒤집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월 초 이 초안에 대한 검토를 마치고 최종보고서를 승인할 예정이다. ‘핵 태세 검토보고서’는 미국 핵 정책의 틀을 제시하는 보고서로 8년마다 발표된다. 미국 정부는 이 보고서를 바탕으로 5∼10년간의 핵 정책과 관련 예산 편성을 결정한다.
박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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