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미국 텍사스주 포트워스에서 ‘마틴 루서 킹’의 날을 맞아 거리로 나온 시민들이 킹의 사진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포트워스/AP 연합뉴스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서 킹 주니어(1929~68)의 생일이자 그의 삶을 기리는 ‘마틴 루서 킹의 날’을 맞아 최근 인종주의 발언을 이어 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대한 성토가 들끓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1일 백악관에서 이민법 관련 논의를 하다 중미와 아프리카 국가를 ‘거지 소굴’(shithole)이라고 칭한 것으로 알려져 ‘외교 참사’급의 후폭풍을 맞고 있다.
<시엔엔>(CNN) 방송은 15일 “킹 목사가 남긴 이정표에 따라 오늘은 피부색이나 출신 국가로 판단되지 않는 평등 사회를 위한 날이 돼야 했다”며 “안타깝게도 트럼프 대통령의 ‘말’이 시민권을 대표하는 오늘을 덮쳤다”고 표현했다. 올해는 킹 목사가 테네시주 멤피스에서 흑인 청소 노동자를 위해 운동을 벌이다 암살당한 지 50주기가 되는 해다. 그가 1963년 워싱턴 링컨기념관 광장에서 25만명을 앞에 두고 한 연설 “나에게는 꿈이 있다”는 미국은 물론 세계 인권운동 역사에 깊이 남아 있다.
킹 목사의 자녀들은 아버지의 정신을 지켜나가야 한다고 강조하며 트럼프 대통령을 향한 날선 비판을 이어갔다. 아들 마틴 루서 킹 3세는 워싱턴에서 열린 행사에서 “우리는 사악한 시대에 살고 있다”며 “문제는 우리 대통령이 권력을 갖고 인종주의를 부추기고 실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용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킹 목사의 고향인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선 딸 버니스 킹이 “우리는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 하나의 혈통, 하나의 운명”이라며 “우리가 함께하는 목소리는 아버지의 유산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보다 더 커져야 한다”고 말했다. 뉴욕에서 열린 기념행사엔 앤드루 쿠오모 주지사와 빌 더블라지오 시장, 척 슈머 민주당 상원의원 등이 참석했다. 더블라지오 뉴욕 시장은 “우리에겐 우리가 사는 이 도시가 최근 흐름에 맞서 싸울 수 있도록 더 나은 곳으로 만들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로스앤젤레스와 포트워스 등 도시마다 시민 수천명이 모여 트럼프 대통령의 반이민 정책을 규탄했다.
아이티 출신 미국 시민들이 15일 플로리다주 팜비치 마러라고 별장 인근에서 아이티를 ‘거지 소굴’에 비유한 것으로 알려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규탄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팜비치/AP 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킹 목사 추모 행사에 참석하는 대신 플로리다주 팜비치의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시간을 보내 입방아에 올랐다. 1986년 연방 공휴일로 지정된 이후 전국 각지에선 기념 행사가 열렸고, 이날을 맞아 대통령들은 봉사활동을 해왔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임기 때부터 20여년간 이어진 전통이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계정에 올라 온 킹 목사 추모 영상을 리트위트하고 “킹 목사의 꿈은 우리의 꿈이다. 이건 아메리칸 드림”이라며 “우리 나라 바탕에 수놓아진, 우리 시민 마음에 새겨진, 인류 영혼에 쓰인 약속”이라고 적은 것 외에 관련 일정을 잡지 않았다. 대통령 소유의 ‘트럼프 인터내셔널 골프 클럽’ 인근에선 아이티 출신 시민 수백명이 아이티 국기와 손팻말을 들고 “아이티는 ‘거지 소굴’이 아니다”라고 외쳤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 부부가 15일 플로리다주 팜비치 마러라고에서 연휴를 보낸 뒤 백악관에 도착해 기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의회 전문 매체 <더 힐>은 민주당 존 루이스 등 하원의원 5명이 오는 30일로 예정된 트럼프 대통령의 의회 연두교서 발표를 보이콧하려는 움직임까지 나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루이스 의원은 킹 목사와 함께 활약한 흑인 민권운동가 출신으로, 최근 인터뷰에서 “양심상 대통령이 연두교서를 읽는 방에 도저히 함께 있을 수 없다”고 입장을 냈다. 프레데리카 윌슨 의원도 불참 사유로 트럼프 대통령의 인종주의적 표현을 언급하면서 “대통령의 메시지는 포용과 모든 미국민을 이롭게 하겠다는 내용 대신 비아냥과 공허한 약속, 거짓으로 가득찰 게 뻔하다”고 비난했다.
김미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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