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5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서 유럽 기업인들과 만찬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빌 맥더멋 SAP 최고경영자, 트럼프 대통령, 조 케저 지멘스 회장, 키어스천 닐슨 미국 국토안보부 장관. 다보스/A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세계화의 축제에 ‘미국 우선주의’라는 메시지를 들고 갔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25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에 참석한 트럼프 대통령을 두고 이렇게 표현했다. ‘어울리지 않는 선물’을 가져갔기 때문일까. 세계 정·재계 주요 인사들이 경제를 비롯한 국제적 현안들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이 자리가 미국 대 유럽 구도의 ‘무역 전쟁’과 ‘통화 전쟁’ 무대가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25일 다보스 현지에서 <시엔비시>(CNBC)와 한 인터뷰에서 “달러는 점점 더 강해질 것이다. 궁극적으로 강한 달러를 보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또 “미국은 다시 경제적으로, 다른 방식으로도 강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스티브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의 전날 발언을 뒤집은 것이다. 므누신 장관은 “약한 달러는 무역 및 기회와 이어지니까 우리에게 좋다”고 발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에 대해 “전후 문맥을 무시하고 나온 코멘트”라며 과도한 시장 반응을 잠재우려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두 사람의 상반된 발언에 외환시장은 요동쳤다. 므누신 장관의 발언 직후 3년2개월 만에 최저로 떨어진 달러 가치는 트럼프 대통령의 말에 상승세를 탔다.
전날에는 윌버 로스 미국 상무장관의 발언이 파장을 일으켰다. 그는 세탁기와 태양광 패널에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처)를 발동한 것을 두고 중국이 보복할 가능성을 예측하지 않았냐는 질문에 “언제나 보복은 있을 수 있다. 무역 전쟁은 매일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미국 군대가 성벽에 도달했다”며 무역 전쟁 본격화를 예고했다. 미국은 18년 만에 대통령이 참가한 것을 비롯해 장관급 인사들을 대거 다보스에 보내 ‘트럼피즘’ 선전에 나섰다.
유럽 쪽은 트럼피즘이 자유주의의 무대인 다보스포럼을 휘젓는 것에 드러내 놓고 반발했다.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 총재는 25일 통화정책회의 뒤 “트럼프 행정부가 통화정책에 인위적 개입을 하지 않기로 한 국제사회의 합의를 깨고 있다”고 비판했다. 유럽중앙은행 통화정책위원 25명 전원은 므누신 장관의 발언이 국제적 합의에 반한다는 입장을 냈다.
로스 미국 상무장관의 ‘선전포고’에도 반박이 나왔다. 안나 세실리아 말름스트룀 유럽연합(EU) 통상 담당 집행위원은 “무역 전쟁을 언급하는 것은 좋지 않다. 무책임하다”며 “전 세계는 미국이 글로벌 무역 무대에서 철수하는 것을 걱정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거물 투자자 조지 소로스는 다보스포럼 만찬 연설에서 “트럼프 정부는 세계의 위험”이라며 “다만 이는 2020년(미국 차기 대선) 혹은 그보다 더 빨리 사라질 일시적 현상”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시엔비시> 인터뷰에서 미국이 빠진 채 일본·오스트레일리아·캐나다·칠레 등 11개국이 출범시키기로 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조건부로 복귀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는 “현재 협상은 끔찍하고, 구축된 방식도 끔찍했다”며 “만약 우리가 상당히 나은 거래를 할 수 있다면 티피피에 들어갈 여지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양자 관계를 좋아한다. 문제가 있다면 끝낼 수 있어서다. (다자 관계에선) 이런 선택권이 없다”고 했다. 그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 대해서도 “끔찍한 거래다. 재협상이 진행중인데, 내가 나프타를 끝내버릴 수도 있다”고 했다.
김미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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