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지지 매체 ‘뉴욕포스트’, 플로리다 총격 사건 직후 ‘총기 규제’ 목소리
지난해 10월 라스베이거스 총격 사건 때만 해도 미온적 태도 보인 적 있어
지난해 10월 라스베이거스 총격 사건 때만 해도 미온적 태도 보인 적 있어
미국 사회에서 다수의 인명이 사상하는 참혹한 총격 사건이 거듭되자 마침내 보수 성향의 언론들도 총기 규제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미국 보수 성향의 타블로이드 <뉴욕포스트>는 지난 14일 플로리다의 고등학교에서 일어난 총격 사건으로 최소 17명이 사망한 직후 이례적으로 “트럼프 대통령, 제발 뭐라도 하시라”라는 강한 메시지의 사설을 1면에 게재했다. (▶관련 기사 : 미국 플로리다 고교서 총기난사, 최소 17명 사망) 그간 총기 규제에 대해 미온적 목소리를 내오던 보수 매체들마저 태도를 바꿨다는 분석이다. 특히 이 매체가 “학살을 막기 위해 우리에겐 합리적인 총기 규제가 필요하다”고 보도한 것을 두고 진보 성향의 <뉴욕타임스> 등 다른 언론들은 보수층의 태도 변화를 분석하는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뉴욕포스트>의 태도 변화에는 플로리다 마조리 스톤맨 고등학교의 총격 사건이 결정적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니콜라스 크루스(19)는 지난 14일 오후 반자동 소총인 ‘에이아르(AR)-15’을 소지한 채 플로리다 주 파크랜드에 있는 마조리 스톤맨 더글러스 고교에 들어가 1시간 넘게 총격을 가했다. 교칙 위반으로 이 학교에서 퇴학당한 크루스는 당시 일부러 화재경보기를 울려 학생들이 교실 밖으로 나오게 한 뒤 도망치는 아이들에게 총격을 가한 것으로 보도됐다. 이 사건으로 17명이 숨지고 최소 16명이 부상했으며, 크루스는 총기를 난사한 뒤 학교를 빠져나갔다가 인근에서 체포됐다.
<뉴욕포스트>는 다음날인 15일 “대통령님, 이제 뭔가를 해야 할 때입니다”라는 사설을 내보냈다. 해당 사설에서 이 매체는 “26명의 목숨을 앗아간 2012년 샌디훅 고교 사건과 2007년 버지니아공대의 총격사건 이후 최악의 학내 총기 난사 사건”이라며 “총기 규제에 반대하고 수정헌법 2조의 권리를 보호하겠다고 주장해왔던 트럼프지만, 반사회주의자인 리처드 닉슨이 대통령이 되어 중국에 갔던 것처럼 효과를 볼 수 있는 상식 수준의 법령과 규제를 추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은 1969년 ‘닉슨 독트린’을 발표한 뒤 중국을 방문해 냉전 체제의 완화를 가속한 바 있다.
특히 이 매체는 1994년에 제정되었다가 2004년에 효력을 다한 ‘연방 살상용 무기 금지법’(Federal Assault Weapons Ban)을 부활시킬 것을 촉구했다. 이 법은 인명 살상용 무기를 제조·소유·판매할 수 없도록 반자동화식 총기나 대용량 탄창이 달린 중화기의 유통을 전면 금지한다. 그러나 2004년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이 법을 연장하지 않으면서 10년 한시 적용법에 머무르게 됐다. 플로리다 고등학교의 총격범이 사용한 반자동화기인 ‘에이아르(AR)-15’은 해당 법안이 규제하던 대표적인 모델로 꼽힌다. 이 법안이 효력을 잃은 2004년 이후 이 모델의 판매가 급증했다. <뉴욕포스트>는 사설을 통해 이 법을 부활시키거나 최소한 이 법의 요지만은 되살릴 것을 촉구했다.
지난 10월 총기 난사범이 라스베이거스의 고층 호텔에서 야외 콘서트장을 향해 총기를 난사한 사건이 있었을 당시에만 해도 <뉴욕포스트>는 “살상용 무기 금지법은 허울뿐이었다”고 지적했으며 “총기 난사 사건은 총기 사건의 일부분. 연간 3만 건에 달하는 미국의 총기 사망사건 중 3분의 2는 자살”이라고 평한 바 있다. 이번 플로리다 고등학교 총격 사건 이후에 나온 사설과는 전혀 다른 태도였다고 볼 수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를 두고 “지난 10월과는 다른 충고를 했다”고 평했다. <뉴욕타임스>는 이러한 변화가 총기 규제 지지자들이 “호의적으로 볼 수 있는 발전”이라고 전했다.
<뉴욕포스트>는 역시나 루퍼트 머독이 소유한 <폭스뉴스>와 함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가장 선호하는 뉴스 매체로 평가받는다. 이 매체는 타블로이드 판형에 자극적인 사진과 제목을 뽑는 것으로 유명하다.
박세회 기자 sehoi.park@hani.co.kr
<뉴욕포스트>의 2월 16일치 1면. ’학살을 막기 위해 합리적인 총기 규제가 필요하다’는 문구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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