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 로젠스타인 미국 법무부 부장관이 16일(현지시각) 워싱턴 법무부 청사에서 2016년 대선 개입과 관련해 러시아인 13명과 기관 3곳을 기소했다고 발표하고 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 개입한 혐의로 지난 16일 러시아 인사 13명과 기관 3곳이 기소됐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와 공모한 미국인이 없다는 사실이 확인됐다며 자신의 정당성이 입증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법률 전문가들은 큰 인형 속에 작은 인형이 겹겹이 들어있는 러시아의 마트료시카 인형 처럼, 로버트 뮬러 특검의 러시아인 기소가 트럼프 대통령과 캠프 인사들을 옭아매는 첫 단계일 뿐이라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러시아 게이트’를 수사하는 뮬러 특검은 지난해 5월 수사를 개시한 지 9개월 만에 러시아 인사와 기관들을 사기 공모 혐의 등으로 기소했다. ‘푸틴의 셰프’로 불리는 러시아 요식업계 거물 예브게니 프리고진도 자금을 댄 혐의로 기소됐다. 이들은 러시아의 ‘인터넷 리서치 에이전시’(IRA)를 중심으로 2014년부터 장기적인 전략을 갖고 미국 대선에 개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온라인에서 분쟁을 촉발하는 글이나 댓글을 올리는 활동을 하는 ‘트롤 팜’ 역할을 하면서 미국 정치 시스템에 대한 혐오를 키우고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후보를 흠집 냈다. 5명은 미국인 신분을 도용한 혐의가, 그 중 3명은 미국인 이름으로 금융계좌를 개설한 금융 사기 혐의가 추가 적용됐다.
뮬러 특검을 대신해 발표한 로드 로젠스테인 법무부 부장관은 미국인이 불법 활동인 줄 알고 참여했거나, 러시아의 개입이 대선 결과를 뒤바꿨다는 혐의는 없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토대로 16일 트위터에 “선거 결과는 영향을 받지 않았다. 트럼프 캠프는 어떤 잘못도 하지 않았고 공모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17일에는 “가짜 뉴스 언론들이 그 러시아 그룹이 나의 대선 출마 한참 전인 2014년 설립됐다는 것을 언급하기를 얼마나 원하지 않는지 참 우습다”며 ‘가짜 뉴스’를 탓했다.
그러나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수사 전문가들이 대통령의 자축은 시기상조라고 말한다”며 아직은 트럼프 대통령이 샴페인을 터트릴 때가 아니라고 했다.
뮬러 특검은 공소장에서 그간 의혹으로만 제기된 러시아의 ‘정보전’ 내용을 구체적으로 적시했다. 이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이득을 가져다줬고 경쟁자인 힐러리 클린턴의 평판을 손상시켰다는 점이 명확해졌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백악관을 떠난 뒤 그를 변호했던 윌리엄 제프리스 변호사는 “이 공소장에 설명된 내용은 러시아 대선 개입의 핵심”이라고 짚었다. 이번 공소장에서 트럼프 캠프 쪽과 크렘린의 공모에 대해 어떤 결론도 내리지 않았으나, 러시아의 범죄 사실을 적시함으로써 향후 수사에서 미국인의 공모 혐의를 입증하는 데 결정적인 법률적 기초를 세웠다는 지적이다.
설사 러시아와의 공모 혐의가 확인되지 않더라도,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 스캔들과 관련해 제임스 코미 전 연방수사국(FBI) 국장을 해임했으며, 뮬러 특검 해임도 지시했다가 백악관 내부의 반발로 철회했다는 등의 사법방해 혐의가 남아 있다. 검사 출신인 조이스 밴스는 “뮬러의 기소는 외국 정부가 미국의 선거에 개입한 것을 범죄로 보고 있다는 신호를 보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선거에 도움을 받으려고 러시아인들을 만난 미국인이 있다면 그 역시 범죄라는 뜻”이며 “그런 행동을 무마하기 위한 어떤 노력도 매우 심각한 사법방해”라고 지적했다.
의회 전문지 <더 힐>은 이와 관련해, 애덤 시프 하원 정보위원회 민주당 간사가 “우리가 모은 비공개 정보들이 확실히 많다”며 “일부 비공개 정보는 (러시아) 공모 문제에 대한 것이고 일부는 사법방해에 대한 문제”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상원과 하원은 뮬러 특검의 수사와 별개로 조사를 진행해 왔다.
사법방해 혐의 등이 입증돼도 현직 대통령에 대한 기소가 불가능하며, 기소되더라도 대통령이 스스로를 사면할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시카고 트리뷴>은 “만일 하원에서 트럼프를 탄핵한다면, 트럼프가 해당 혐의에 대해 스스로를 사면할 수 없으며 상원의 탄핵 재판에 직면하게 된다”며, 혐의가 입증되면 의회의 ‘정치적 결단’이 남는다고 했다.
전정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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