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터에서는 김은정이 쓴 안경의 브랜드를 알고 싶어하는 이들이 잔뜩이다. 몇몇 사용자들은 “안경 브랜드 담당자는 사장 멱살을 잡아서라도 김은정을 당장 모델로 섭외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사진 한국방송 갈무리.
‘안경 선배’로 불리는 한국 여자 컬링 국가대표팀의 스킵(컬링에서 주장을 일컫는 말) 김은정 선수가 국외에서도
인기를 누리고 있다.
한국의 ‘의성 자매들’이 20일 미국과의 경기에서 승리하면서 예선 두 경기를 남긴 상태에서 4강 진출을 확정 짓자 <타임>, <뉴욕타임스> 등 미국의 주요 언론이 김은정 선수를 앞세워 컬링팀의 인기를 보도하기 시작했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20일(현지시간) “이 올림픽 컬링 선수가 인터넷의 새로운 영웅으로 등장한 이유는 그녀의 경기 중 표정 때문”이라며 폭발적인 인기요인을 분석했다. 해당 기사에서 <타임>은 “운동선수가 노력만으로 인터넷에서 금메달을 따기는 어렵다”며 “세계 인터넷 사용자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김은정의 극단적인 집중력과 경기 중에 짓는 표정”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한국과 미국의 트위터 사용자들은, 경기에 진지하게 임하는 그녀의 사진에 찬사를 보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며 “위대한 그녀에게 경배를. 아직 컬링의 챔피언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그녀는 이미 인터넷에서 승리했다”고 밝혔다.
<뉴욕타임스>는 같은 날 아예 한국 컬링 대표팀 멤버 대부분의 고향인 경상북도 의성을 찾아 체육관에서 합동응원을 하는 고향 사람들의 열기를 보도했다. 이 매체는 “의성의 방방곡곡에서 직접 만든 플랫카드와 깃발을 들고 모인 사람들이 샷을 던질 때마다 소리를 쳤다”며 현장의 분위기를 전했다. 20일 컬링팀의 승리가 확정되자 체육관 바닥에서 춤을 췄다는 의성 주민 정풍자(75) 씨는 <뉴욕타임스>에 “컬링팀 경기가 있을 때는 저녁도 안 먹는다”며 “경기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밝혔다.
<뉴욕타임스>는 컬링이 한국에 소개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며 2006년 의성에 세워진 ‘의성 컬링센터’가 거의 최초라고 보도했다. 1994년 대한컬링경기연맹이 창설되었고 1998년에 강릉 컬링센터가 개장한 바 있지만, 국내 최초로 4시트 국제 규격을 갖춘 전용 컬링센터를 지은 것은 의성 컬링 센터가 처음이다.
<뉴욕타임스>는 해당 기사에서 “김은정은 이번 올림픽에서 가장 상징적인 패션 액세서리로 떠오른 안경을 쓰고 인터넷 밈(인터넷에 반복해 떠도는 사진이나 영상)이 되어버린 특유의 무표정으로 경기한다”고 전했다. 이 매체는 의성 출신의 김경애(24), 김영미(26) 자매와 동생 김경애의 친구인 김선영(24) 그리고 후보 선수인 김초희의 별명을 소개하기도 했다. 이들의 별명은 각각 스테이크, 서니, 팬케이크, 쵸쵸다. 참고로 스킵 김은정의 별명은 ‘애니’다.
김은정 선수의 표정을 재미있게 재구성한 사진. 커뮤니티 갈무리.
<유에스에이투데이>는 김은정을 ‘슈퍼맨의 반대’라고 표현했다. 슈퍼맨 클라크 켄트는 세상을 구하고 자신의 본업인 ‘데일리 플래닛’의 기자로 돌아오면서 정체를 숨기기 위해 안경을 쓰지만, 빙판 위의 영웅인 김은정은 안경을 쓰고 빙판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유에스에이투데이>는 “한국의 여자컬링팀은 평창 최고의 벼락스타”라며 “열악한 환경에서 성장한 배경이 성공과 결합해 올림픽에서만 쓸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밝혔다. 해당 매체는 “시점과 장소가 이들을 컬링으로 이끌었다”며 ‘팀 킴’(모두가 김 씨라 붙은 별명)의 형성배경을 설명하기도 했다.
21일 강릉컬링센터에서 열린 여자 컬링 예선 대한민국과 러시아 출신 올림픽 선수(OAR)의 경기에서 대한민국 주장 김은정이 스위핑 방향을 지시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내 매체의 보도를 보면, 김영미(27)와 김은정(28)이 의성여고 1학년 때 방과 후 활동으로 컬링을 시작한 시점은 2007년으로 국내 최초의 국제 규격 컬링장인 ‘의성 컬링센터’가 세워진 직후다. 이들이 컬링을 시작한 6개월 뒤 김영미의 동생인 김경애가 언니 물건을 전해주러 왔다가 얼떨결에 컬링을 시작했고, 얼마 후 김경애의 친구인 김선영(25)이 친구를 따라 자원하면서 팀이 꾸려졌다는 ‘팀 창립 설화’는 유명하다.
그러나 의성에서 이 팀만 난 것은 아니다. 경북매일의 설명을 보면, 한국 컬링 대표팀은 ‘경북 대표팀’ 또는 ‘의성 대표팀’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 컬링 대표팀 15명(선수 12명, 감독 3명) 가운데 무려 12명이 대구·경북 출신이며, 이 중에서도 의성 출신이 6명으로 가장 많다. 현재 의성 컬링장에서 훈련한 많은 이들이 여자컬링 선수로 활약 중이거나 실업팀의 지도자로 선수 육성에 힘을 쏟고 있다.
박세회 기자
sehoi.pak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