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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중남미

“왜 소년들은 방아쇠를 당기는가?”

등록 2018-02-27 09:53수정 2018-02-27 10:54

NYT 최근 칼럼 ‘소년들은 무사하지 못하다’서
학내 총기난사 사건 97%가 소년 범죄 지적
“적절한 남성성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움직임 없어”
또래 서열서 탈락한 소년, 총 통해 균형 맞추려 분석도
해당 이미지는 자료사진입니다. 사진 게티이미지스뱅크.
해당 이미지는 자료사진입니다. 사진 게티이미지스뱅크.

17명의 목숨을 앗아간 플로리다 고등학교 총격 사건이 지나간 자리에 거대한 의문이 남았다. “방아쇠를 당기는 건 왜 소년들일까?” 미국 사회가 이 문제를 두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미국의 코미디언 마이클 이언 블랙은 지난 21일 ‘소년들은 무사하지 못하다’(The Boys Are Not All Right)는 제목의 〈뉴욕타임스〉 게재 칼럼을 통해 이번 사건으로 드러난 현상을 짚고 나름의 해석을 내놨다. 이언 블랙은 “지난주 플로리다의 한 학교에서 십대 다수를 포함해 17명이 목숨을 잃었다. 마조리 스톤맨 더글러스 고등학교가 샌디훅, 버지니아 테크, 콜럼바인 같은 대량 학살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이 사건들의 공통점은 총 그리고 소년(boys)”이라며 “방아쇠를 당긴 대부분이 소년”이라고 했다.

미국의 진보 매체 〈마더 존스〉가 분석한 자료를 보면, 1982년부터 2018년까지 일어난 98건의 총기난사 사건 중 97%(95건)가 남성이 저지른 범죄다. 나머지 세 건만이 여성 또는 혼성공범의 소행이었다. 또 이들 여성이 관련된 범죄는 학내 총기 난사사건과 거리가 멀다. 지난 2015년 당시 27살의 타슈핀 말릭이 남편 사이드 파루크(당시 28)와 함께 샌 버나디노의 사회복지시설에서 총기를 난사한 사건, 2014년 캘리포니아주 알투라스에서 44살의 셰리 래쉬가 원주민 보호구역의 관공서에서 총기를 난사한 사건 그리고 2006년 캘리포니아 주 골레타에 있는 우편물 분류소에서 44살의 여성 제니퍼 산마르코가 5명을 숨지게 한 사건이다.

모두 16건에 이르는 학내 총격 사건은 10대와 20대의 범행이 다수를 차지했다. 공범을 포함한 18명 중 범행 당시 서른 살 이상은 불과 2명 뿐이었고 나머지 16명은 20대 미만(8명)이거나 20대(8명)였다. 이 통계는 한 장소에서 4명 이상이 사망한 사건을 ‘총기 난사’(mass shooting)로 분류하고, 장소를 바꿔가며 짧은 시간 동안 여러 명을 살해한 ‘연속살인’(spree killing)도 여기에 포함했다. 통계로 살펴봐도 ‘소년들이 괜찮지 않다’는 이언 블랙의 말은 사실이다.

이언 블랙은 “아직 수많은 장애물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세상은 점차 어린 여성들이 진출하기에 적합한 환경으로 변해가고 있다. 반면 어린 남성들의 상황은 그렇지 않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어 “지난 50년 동안 미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가 재정립됐다. 이제 여성은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어떤 것이든 될 수 있다는 말을 들으며 자란다”며, 이는 “오랜 시간에 걸쳐 이뤄진 여성 담론의 수혜자가 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반면 “소년들에겐 남성성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려주려는 적절한 사회적 움직임 없었다”며 “‘남자가 되라’(be a man)는 말을 들어도 그게 대체 무슨 의미인지 알 수가 없었다”고 했다. 이언 블랙은 “강함을 기준으로 하는 전통적이고 시대착오적인 남성성 모델에 너무 많은 소년들이 갇혀있다. 심지어 소년들은 갇혀있는 기분이 어떤 것인지 표현할 언어도 갖지 못한 채 갇혀있다. 왜냐하면 모든 감정을 드러내고 나누는 대화의 방식은 (남성성 모델의 관점에서) 섬세하고 여성적인 것으로 비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남성성에 대한 이러한 갈등 속에서 “길을 잃은 남성의 선택지는 포기와 분노이고 이로 인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봐왔다”고 주장했다.

이 글은 이언 블랙이 플로리다 고등학교의 총격 사건이 일어난 직후 트위터에 올렸던 자신의 단상들을 모아 정리한 것으로, 〈뉴욕타임스〉에 게재되기 전부터 큰 관심을 끌었다. 16살 남자아이의 아버지이기도 한 그의 주장에 다른 언론들도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총기 난사 사건의 원인을 ‘정신 이상을 가진 개인의 일탈’(규제 반대론), ‘상식적인 총기 규제의 부재’(규제 찬성론)로 보는 기존의 대립된 해석들과는 다른 관점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한편에서는 새로운 주장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유에스에이 투데이〉는 블랙의 이야기가 페미니스트들이 수십 년 동안 지적해 온 “유해한 남성성”(toxic masculinity)에 대한 담론이라고 전했다. ‘유해한 남성성’은 사회적으로 고착화된 남성적 규범과 행동의 일부를 뜻한다. 다른 사람을 지배하고자 하는 욕구, 지나친 경쟁심, 지나친 자기 의존성, 감정 표현의 억제 등을 들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는 “남자가 말이야”로 시작하는 대부분의 말이 이에 해당한다.

이와 유사한 분석은 지난 2012년 샌디훅 초등학교 총기 난사사건 이후에도 나왔다. 미국 국립과학재단이 12명의 사회과학자들에게 그 원인 분석을 의뢰했더니 “타인에 대한 지배와 폭력을 미화하는 대중문화의 맥락 속에서, 남성성에 대한 문화적 영향이 청소년기에는 특히 민감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이 보고서는 “육체적으로 발달이 더딘 소년들은 신장, 근육질의 몸, 운동능력, 성숙미를 강조하는 또래의 서열에서 탈락할 수 있는데, 총은 이러한 경쟁에서 균형을 맞춰주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니콜라스 크루스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 인스타그램.
니콜라스 크루스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 인스타그램.

동국대학교 경찰행정학부 곽대경 교수(사회학)는 〈한겨레〉에 “일리가 있다”면서도 사건의 원인을 단순화하는 걸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곽 교수는 “폭력은 좌절과 분노를 외부로 표출하는 행동이다. 남성이 더 폭력적인 성향을 나타내기는 하지만 이를 근거로 남성성과 폭력성을 일치시켜서는 안 된다”며 “이언 블랙의 해석이 일부를 설명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으로 총기 문제가 사라지리라 기대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남자아이들은 어려서부터 게임이나 아버지로부터 총기에 관해 학습할 가능성이 큰데 이 점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도 했다.

범죄심리학자 이수정 교수(경기대학교)는 “새로운 담론은 아니지만 중요한 이야기”라며 “가해자가 정신과 약물을 먹고 있던 것은 사실이지만, 사회관계망 서비스(인스타그램)에 올린 글을 보면 무기에 대한 찬양 등이 일관성 있게 나타나는 것으로 봐서 강한 남성성에 대한 동경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어 그는 “이러한 사건은 학교에서 유능하게 평가받는 아이들이 저지르는 게 아니라 문제행동을 하거나 따돌림을 받는 아이들 사이에서 일어난다. 일종의 피해의식에 기인한 것이 대부분”이라며 “지난 수십년간 여성에 대한 성 고정관념은 바뀌어 왔지만, 남성에 대한 성 고정관념은 변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해당 칼럼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밝혔다.

그는 또 “사회 운동의 발전 양상이나 여성의 사회적 위치는 미국이 우리보다 앞서있지만, (해당 칼럼이 주장한) 미국의 남성성 교육에 대한 문제의식은 우리 사회와 공유될 수 있다”며 “(가정과 학교에서) 서울대에 가고, 검사가 되고, 정치인이 되어서 남을 지배하는 강력한 남자가 되라고 가르치다 보니, 그런 유능함을 발휘하지 못하는 아이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할 기제를 갖지 못하게 됐다”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해당 범죄가 한국의 소위 ‘묻지 마 범죄’(무차별 대상 범죄)와 그 양상 면에서 비슷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최근 한국에선 ‘묻지 마 범죄’ 가해자들이 대부분 남성이고, 피해자들은 여성인 경우가 많았다. 이 남성들은 남성 사회에서 지배적인 역할을 하는 이들이 아니며, 남성 중에서도 핍박받는 남성들이 남성들을 대상으로 보복하지 못하고 여성을 대상으로 돌발행동을 하는 양상을 보인 것”이라고 짚었다.

박세회 sehoi.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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