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비핵화를 대미 협상 의제로 삼을 수 있고 “대화가 지속되는 동안” 핵·미사일 실험을 중단하겠다고 밝히자, 미국을 비롯한 각국 외신들은 이를 상당한 태도 변화로 받아들이고 긴급 뉴스로 전했다.
<뉴욕 타임스>는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라는 제목으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의 발표 내용을 긴급 뉴스로 전했다. 이 신문은 인터넷판 머리기사로 소식을 전하면서 북한이 모든 핵·미사일 실험 중단 의사까지 밝혔다고 전했다. 이게 북한의 분명한 입장이라면 “김정은이 미국으로부터의 안전 보장을 대가로 핵무기를 포기할 의향이 있음을 처음으로 밝힌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북한이 가까운 시일 안에 핵무기를 해체하겠다고는 하지 않았다면서도, 남북 관계를 개선하려는 문재인 대통령의 노력이 중요한 이정표를 세웠다고 평가했다.
<시엔엔>(CNN)도 “김정은이 핵실험 동결을 약속했다”는 제목으로 긴급 뉴스를 내보냈다. <블룸버그 뉴스>는 “북한이 핵무기 포기 가능성을 띄워 미국과의 대화의 문을 열었다”는 제목으로 속보를 내보냈다. 이 기사에서 로버트 켈리 부산대 교수는 “많은 사람들이 예상한 것 이상의 분명한 진전이지만, 아직은 수사에 머무는 수준”이라는 평가를 내놨다.
이처럼 미국 언론들은 3차 남북 정상회담 개최 등 다른 합의 사항들보다는 북한이 체제 안전을 보장하면 핵무기를 포기할 수 있고, 대화가 지속되는 한 핵·미사일 실험을 중단하겠다고 밝힌 점에 주목했다. 김정은 위원장의 통치 스타일이 큰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에이피>(AP) 통신은 “김정은이 장군들에 둘러싸여 미사일 발사를 축하하던 2017년의 지배적 이미지로부터 극적인 작별을 했다”며 “전임자들의 그림자로부터 확실히 벗어나려는 것 같다”고 했다.
<엔에이치케이>(NHK) 방송 등 일본 언론들도 주요 뉴스로 재빠르게 보도했다. 이 방송은 정 실장의 발표 내용을 거의 실시간으로 자막으로 전했다. <교도통신>도 남북 정상회담 개최와 핵무기 폐기 용의 등을 자세히 보도했다. 이 통신은 북한이 북-미 대화에 대한 입장을 밝힌 만큼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대응이 한반도 정세의 향배를 좌우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남북 간 합의 소식은 금융시장과 상품시장까지 움직일 정도로 파장이 컸다. 미국에서 일과 시간이 시작되기 전에 전해진 소식은 북-미 관계 개선 가능성을 띄우는 것으로 받아들여져 뉴욕증시 주가지수 선물 가격이 상승했다. 석유시장도 이 소식을 위험 감소 요인으로 받아들이면서 브렌트유는 배럴당 46센트, 서부텍사스유는 51센트 상승했다.
이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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