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용 국가안보실장 8일(현지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 제공
북-미 정상회담을 향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거침없는 행보를 트럼프 행정부가 쫓아가지 못하고 있다.
미국 외교 수장인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은 ‘트럼프-김정은 5월 회담’이 발표된 다음날인 9일 그 결정은 “대통령이 내린 것이다”라고 말했다. 아프리카를 순방중인 그는 “오늘 아침 일찍 그 결정을 놓고 대통령과 얘기했고, 우리는 좋은 대화를 했다”고만 밝혔다.
틸러슨 장관은 트럼프 행정부 내에서 북한과의 대화를 가장 강력하게 주장해온 인물이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특사단을 만나기 직전에 트럼프와 통화했으나, 트럼프가 김정은과의 회담을 즉각 수락할지에 대해서는 언질을 못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틸러슨은 북-미 정상회담 발표 몇시간 전까지도 “북한과의 대화는 먼 길이 남아있다”고 말한 바 있다. 틸러슨은 10일 케냐에서 모든 공식 일정을 취소했다. 측근들은 “북한 등 국내에서의 주요 문제로 최근 며칠동안 일해서 상태가 좋지 않다”고 전했다.
미국 쪽은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이 이끄는 한국 특사단이 미국을 방문하기 전에 이미 김정은이 트럼프와의 회담을 제안했다는 것을 파악하고 있었다. 외교안보 쪽의 고위 관리들은 트럼프가 시간을 갖고 이 문제에 대해 자신들과 먼저 상의할 것으로 생각했다고 <뉴욕타임스> 등 미국 언론들은 전했다.
트럼프의 속전속결 행보에 백악관 쪽도 혼란스런 메시지가 나오고 있다. 세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9일 “우리는 북한의 말과 일치하는 구체적인 행동이 나오기까지는 그 만남(북-미 정상회담)을 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트럼프가 이미 북미 정상회담을 5월까지 하겠다고 밝힌 상황에서 어울리지 않는 논평이다. 미국 언론들은 샌더스가 쓸데없는 말을 했다고 비판했다. 이날 오후 백악관 관리들은 북-미 정상회담과 관련한 전날 발표에서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다고 해명했다.
트럼프는 이후 트위터 등에서 “북한은 아주 잘 할 것이고, 나는 우리가 엄청난 성공을 거둘 것이라 생각한다” 등의 발언을 이어갔다.
정의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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