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루이스오비스포고교 학생들이 14일 동맹휴업 집회에서 정부의 적극적인 총기 규제를 촉구하고 있다. 샌루이스오비스포/AP 연합뉴스
미국 플로리다주 고교 총기 난사 사건 발생 한 달을 맞아 정부의 총기 규제를 촉구하는 학생들의 목소리가 들불처럼 일어났다. 미국 전역에서 학생 수만명이 시간을 정해 동맹휴업에 나선 것이다.
<시엔엔>(CNN) 방송은 메인주에서 캘리포니아주까지 동·서부 전역에서 14일 오전 10시(현지시각)에 맞춰 대규모 학생 시위가 벌어졌다고 보도했다. 지난달 14일 플로리다주 마저리 스톤맨 더글러스 고등학교 사건에서 숨진 희생자를 추모하는 자리였다. 학생들은 희생자 17명을 기리며 최소 17분간 교실 밖에서 구호를 외쳤다. “더 이상의 폭력은 없다”, “다음은 우리인가?”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었다. <워싱턴 포스트>는 “이번 동맹휴업은 1960년대 말 베트남전 학생 시위 이후로는 규모나 범위 면에서 가장 크다”고 했다.
사건이 일어난 마저리 스톤맨 더글러스 고교 축구장에는 학생과 주민 3000여명이 모여 희생자들 가족을 위로했다. 학생 테일러 모랄레스는 “한 달이 지나고 일부는 잊었겠지만, 우리는 여전히 여기서 항의한다. 변화가 일어날 것을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로스앤젤레스 그러나다 힐스 차터 고교에서는 학생 수백명이 미식축구 경기장에 줄을 서서 ‘이제 그만’(Enough)이라는 글씨를 만들어냈다.
워싱턴과 뉴욕에 모인 학생들은 백악관과 의사당, 트럼프타워 등을 돌며 정부의 소극적 행태를 비판했다. 뉴욕주 학생 케이트 휘트먼은 “이건 좌와 우의 문제가 아닌 공공의 안전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온라인에는 ‘두 번 다시는 안 된다’(Never again)란 해시태그를 달고 총기 규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전미총기협회(NRA)는 이런 분위기에 “우리의 학교를 보호하고, 학교 폭력을 중단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자”는 글을 올려 비난받았다.
미국 워싱턴디시 곤자가 컬리지 고등학교 학생들이 14일 의사당 앞에서 지난달 14일 플로리다 총기 사고 희생자의 이름과 나이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총기 규제를 주장하고 있다.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학생들은 모든 공격용 무기의 판매 금지, 총기 판매 전 철저한 신원조회, 폭력 성향 총기 소지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총기회수법 제정을 주장했다. 오는 24일과 다음달 20일에도 같은 취지의 전국적 시위가 예정돼 있다. 4월20일은 13명이 목숨을 잃은 콜로라도주 콜럼바인고교 총기 사건이 발생한 지 19년이 되는 날이다.
이날 미국 하원에선 총기 규제는 빼고 학교 안전에 초점을 맞춘 ‘학교 폭력 제재 법안’이 통과됐다. 상원을 거치면 2019년부터 10년간 학교 경비와 안전 훈련에 예산 5억달러(약 5328억원)가 투입된다. 총기 구매자 신원조회 강화와 구매 연령 상향은 제외됐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구매 연령을 올리겠다고 공언했다가 입장을 번복했다. 플로리다 참사 뒤 총기 규제를 요구하는 여론에도 불구하고 알맹이 빠진 법안만 나온 셈이다.
전날 캘리포니아주 몬터레이 카운티 시사이드고교에선 경찰 출신 교사 데니스 알렉산더가 총기 안전 교육을 하다 오발 사고를 내 학생 3명이 다쳤다. 트럼프 대통령이 주장한 ‘무장 교사 배치안’에 대한 우려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김미나 기자
min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