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볼턴 미 국가안보보좌관 내정자가 지난해 2월 매릴랜드주 옥슨 힐에서 열린 보수주의정치행동회의(CPAC)에서 연설하고 있다. 옥슨 힐/AP 연합뉴스
2003년 8월2일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존 볼턴 당시 미국 국무부 차관을 “인간 쓰레기, 피에 주린 흡혈귀”라며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볼턴의 북한 체제 비난에 대한 맞대응이었다. 이 사건으로 볼턴은 워싱턴의 외교안보 주류 진영에서 ‘강경 매파’로 낙인찍혔다. 나중에 유엔 대사로 임명될 때에도 걸림돌로 작용하는 악연의 시작이었다. 당시 조지 부시 행정부의 국무부 군축 및 국제안보 담당 차관이던 볼턴은 그해 7월31일 서울을 방문해 동아시아연구원 주최 강연회에서 ‘기로에 선 독재정권’이라는 강연을 통해 북한 정권을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그는 “김정일은 평양에서 왕족같은 삶을 살면서도, 수만명의 주민들을 수용소에 가두고 수백만의 주민들은 비참한 가난에 처하게 했다”며 “북한의 많은 주민들에게 삶은 지옥같은 악몽이다”라고 비난했다.
공교롭게도 그날은 북한이 6자회담 재개에 나설 준비가 됐다고 미 국무부가 발표한 날이었다. 국무부는 볼턴차관이 새로운 사태 진전을 알지 못했다며 그와 거리두기를 했다.
이틀 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미 행정부의 관리라고 하는 자의 입에서 이런 망발이 거리낌 없이 튀어나오는 것을 보면 미국이 우리와 회담을 하자는 진의 자체가 의심스러워진다”며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정문제가 결정되는 회담의 중요성으로 보나 인간존엄의 견지에서 볼 때도 이 회담에 인간쓰레기, 피에 주린 흡혈귀와 같은 자가 끼울 자리는 없다”고 6자회담에서 볼턴과의 대화를 거부했다. 부시 대통령은 볼턴을 옹호하고 그가 6자회담에서 배제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9월 6자회담이 재개됐을 때 그는 국무부 내에서 6자회담에 전혀 관여하지 못했다.
2005년 볼턴의 유엔 대사 인준과정에서도 이 사건은 문제가 됐다. 볼턴은 상원 외교위에서 당시 자신의 연설은 국무부와 토머스 허바드 주한 미국대사의 승인을 받았고, 허바드가 사의를 표했다고 말했다. 이에 허바드는 당시 자신은 볼턴에게 “표현을 약화”하라고 충고했고, 볼턴이 몇가지 사실관계 수정을 한 것에 대해서만 고맙다고 말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볼턴은 결국 의회의 인준을 정식으로 받지 못했다. 그는 의회 휴회 기간 동안 대통령의 일방적 임명으로 부임했고, 2006년에 의회의 정식 인준을 받지 못해 유엔대사를 그만둬야 했다. 그의 유엔대사 인준 불발은 공화당까지 가세한 결과였다.
유엔대사에서 물러난 뒤 그는 무책임한 강경발언만 쏟아내는 눈치없는 매파로 워싱턴에서 낙인찍혔다. 우파 방송인 <폭스뉴스>의 평론가 등으로 지내던 그는 지난 2월 평창겨울올림픽을 계기로 북한과의 해빙 분위기가 조성된 뒤에도 북한을 비난하는 최선봉에 섰다. 지난 2월28일 <월스트리트저널>에 실린 ‘북한을 선제타격하는 합법적 경우’라는 기고를 통해 “북한의 핵무기가 조성하는 현재의 ‘불가피한 일’에 선제타격으로 대응하는 것은 미국에서 완전히 합법적이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과의 정상회담에 나서겠다고 밝히자, 볼턴은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 주장은 접는 태도를 보였다. 그는 지난 19일 <라디오프리아시아>(RFA)와의 인터뷰에서 “이걸 명확히 하자. 나는 북한의 핵 프로그램을 제거하는 군사행동을 선호하지 않고, 아무도 그게 일어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면서도 “나의 희망은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을 비핵화하는 진정한 목적을 놓고 북한과 진지한 대화를 하는 것이고, 만약 북한이 그런 진지한 토론을 할 준비가 안 됐다면, 아주 짧은 만남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북한에 경제적 지원을 제공해야만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북한에게 평화협정을 줘야만 해서는 절대로 안된다”고 말하며, 북한 주민에 대한 경제적 진전을 주는 방안은 남북한 통일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북한은 미국 대통령과 만나는 게 행운이다”라며 북미 정상회담의 목표는 북한 비핵화일 뿐이며 다른 보상은 없다고 강조했다.
사흘 뒤 안보보좌관에 지명되자 그는 “내가 그동안 개인적으로 이야기했던 것들은 이제 다 지나간 일”이라며 “중요한 것은 대통령이 하는 말과 내가 그에게 하는 조언”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역할은 “정직한 중개인”이라며 “대통령에게 폭넓은 선택지를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대통령이 결정하면 참모들은 이를 실행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북한 문제에 대해서 조언하지만, 대통령의 결정을 적극적으로 실행하겠다는 것이다.
북한과의 대화를 앞두고 대북 강경파 볼턴이 안보보좌관으로 등장한 것에 대해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을 지낸 위성락 전 주러시아 대사는 “(북-미) 협상의 준비과정이 녹록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은 자연스럽다”고 말했다. 그러나, 위 전 대사는 “대통령이 같은 생각을 가진 팀을 만든 것은 좋은 점”이라면서 “정책의 정합성 일관성은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준형 한동대 교수는 “트럼프 입장에서는 진용을 완성한다는 의미도 있다”며 “북한이 받아들일 때는 (볼턴 임명의 메시지가) 대화하자는 거냐 말자는 거냐, 불안할 것”이라고 한-미 간 조율이 더 세밀해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의길 김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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