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지역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기 위해 이들을 대상으로 오케스트라를 만드는 운동을 펼쳐온 베네수엘라 출신의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사진)가 25일(현지시각) 별세했다고 현지 언론이 전했다. 향년 79.
베네수엘라 서부 안데스 지역인 발레라에서 태어난 고인은 어려서부터 음악을 꿈꿨다. 할아버지는 이탈리아에 살 때 오케스트라를 만들었고, 할머니는 열렬한 오페라 팬이었다. 아버지는 기타, 어머니는 피아노를 칠 줄 알았다. 하지만 고인은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의 대학에서 경제학 공부를 했다. 가족의 생계를 돕기 위해서였다. 학위를 딴 뒤 정부 기관에서 경제학자로 일했고 60년대에는 국회의원에 당선되기도 했다.
그는 1975년 카라카스 빈민가의 한 주차장에서 빈민 청소년 11명으로 오케스트라를 만들었다. 빈곤 청소년을 위한 음악교육시스템 ‘엘 시스테마'(El Sistema. ‘The System’을 뜻함)의 첫걸음이었다. ‘가장 빈곤한 지역 아이들이 클래식 음악교육을 통해 가난과 맞서도록 하는 법 배우기.’ 엘 시스테마 설립 정신 가운데 하나였다.
그는 당시를 두고 이렇게 회상했다. “아이들이 오케스트라 리허설에 참석하도록 하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는 매우 중요한 성취였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이들은 마약을 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 이 무렵 고국 베네수엘라에는 오케스트라 한 곳만 활동하고 있었다. 이런 열악한 음악교육 현실도 그를 자극했다.
엘 시스테마는 그 뒤 약 300개의 합창단과 오케스트라로 몸집을 불렸다. 이 시스템에 기대어 클래식 음악과 접할 수 있게 된 아이들은 매년 대략 100만명에 이른다는 발표도 나왔다. 이 교육모델은 세계 60개국 이상으로 퍼져나갔다. 엘 시스테마를 상징하는 악단인 ‘시몬 볼리바르 유스 오케스트라’는 미국 뉴욕에서 영국 런던까지 주요 콘서트장의 붙박이 공연악단으로 오래전에 우뚝 섰다.
전 베네수엘라 지도자 우고 차베스는 엘 시스테마의 강력한 후견자였다. 집권 당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로스앤젤레스(LA) 필하모닉 음악감독 구스타보 두다멜은 스승인 아브레우의 사망 소식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짧은 추모의 글을 남겼다. 베네수엘라 빈민가 출신인 두다멜은 엘 시스테마가 낳은 최고 스타이다.
강성만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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