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역삼동 구글코리아 본사.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우리는 구글이 전쟁 사업을 해선 안 된다고 믿는다.”
고위급 엔지니어 수십명 등 구글 직원 3100여명이 순다르 피차이 최고경영자(CEO)에게 미국 국방부 파일럿 프로그램 ‘프로젝트 메이븐’에서 철수할 것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뉴욕 타임스>는 4일 이 소식을 전하면서 “첨단 인공지능(AI)이 군사 목적으로 활발히 사용되면서 등장한 실리콘밸리와 정부 간 문화적 충돌”이라고 해석했다.
메이븐은 인공지능을 이용해 영상을 포착, 분석하는 프로그램이다. 몇번의 검색과 마우스 클릭만으로 세계 곳곳의 지도와 지형, 건물 이미지 등을 볼 수 있는 ‘구글 어스’와 비슷한 형태라는 것이 미국 국방부 관계자의 설명이다. 사람 얼굴이나 정확한 목표 지점을 식별해 타격 능력을 향상할 수 있으며, 이미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진압 작전 등에 사용되기도 했다.
구글 쪽 대변인은 메이븐을 두고 “위협적인 것이 아니다”라며 “대부분 회사의 상황 설명을 듣기 전에 서명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또 “국방부는 모든 구글 클라우드 고객에게 제공되는 오픈소스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고 있다”며 “사람의 얼굴을 인식하고 표시하는 방식으로 오히려 생명을 구할 수도 있다”, “반복적인 일을 하지 않도록 돕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직원들은 “이 계획이 구글 브랜드와 인재 확보에 손해를 입힐 것”이라며 “모든 구글 사용자는 우리를 믿고 있다. 다른 회사들도 참여하고 있다는 주장이 구글을 덜 위험하게 만들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 프로젝트를 즉시 취소하고, 구글뿐 아니라 연계된 하청업체들까지 모두 ‘전쟁 기술’을 구축하지 않을 것이란 취지의 분명한 정책을 공표하고 시행하라고 요구했다.
구글 직원들이 발표한 성명 내용. 뉴욕 타임스 누리집 갈무리
첨단 기술을 선도하는 구글 등 정보기술(IT) 업체들은 이미 국방 분야에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해왔다. 구글의 모기업인 알파벳의 기술고문이자 전 구글 최고경영자인 에릭 슈밋은 국방부 자문기구인 국방혁신위원회를 이끌고 있다. 구글의 현 부사장인 밀로 메딘도 여기에 속해있다. 슈밋은 지난해 11월 언론 인터뷰에서 인공지능 무기를 언급하며 “국가 안전을 지키는 일을 돕기 위해 사용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마존은 지난해 8월 미국 국방부와 공동으로 이미지 인식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발표했으며, 마이크로소프트도 그해 10월 자사 클라우드 기술을 통해 군사 기밀을 처리하는 계약을 따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새로운 미국 안보센터’ 선임연구원인 폴 셔르는 <뉴욕 타임스>에 “기술 분야엔 강력한 자유주의 정신이 있었고, 정부의 기술 사용에 대한 경각심이 일어왔다”며 “갑자기 인공지능이 연구실에서 실제 생활로 이동하게 되면서 필연적으로 구글 내부에서 충돌이 발생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유엔이 ‘킬러 로봇 금지 캠페인’을 시행한 지 5년째지만, 세계는 여전히 효율성과 윤리적 정당성의 갈림길에 서 있다. 국제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는 미국·중국·이스라엘·러시아·영국·한국 등을 자동화 무기 체계 개발에 자금과 자원을 투입하는 곳으로 분류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유엔의 킬러 로봇 금지 캠페인에 동참한 국가는 22개국에 불과하며, 여기엔 브라질·이집트·이라크·파키스탄 등이 포함돼 있다. ‘주요국’들은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독일 정부의 입장이 어떤 반향을 일으킬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지난 2월 뮌헨안보회의에 참석한 루트비히 라인호스 독일군 사이버·정보사령관은 “우리는 매우 분명한 입장이다. 자율 무기 시스템을 조달할 의사가 없다”고 밝혔다.
김미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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