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 지명자(중앙정보국 국장)의 극비 방북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면담은 북-미 정상회담 준비가 ‘톱다운’ 방식의 압축적 속도전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으로 풀이된다. 북-미 실무 접촉이 잘 포착되지 않은 탓에 준비 부족을 이유로 제기됐던 ‘연기론’도 힘을 잃을 것으로 예상된다. <로이터> 통신은 이번 방북은 한국의 서훈 국가정보원장과 북한의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이 주선했다고 18일 보도했다. 남북, 북-미 접촉의 삼각 축 역할을 하는 정보 수장들의 공조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폼페이오 지명자의 극비 방북은 ‘5월 말 혹은 6월 초’라는 북-미 정상회담의 촉박한 시한을 맞추기 위해 실무적으로 불가피한 측면이 있어 보인다. 한국 정부 관계자는 “이번 회담은 아무것도 없는 제로 상태에서 하는 것이라 의제뿐 아니라 날짜, 의전, 경호 등 준비하는 데 몇달이 소요될 것을 한두달 안에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상적 절차대로 국장-차관-장관급 순의 실무회담을 거쳐 정상회담을 준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이번 방북은 실무적·기술적 필요 외에도 다목적 포석을 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시점상으로 보면, 지난달 25~28일 김정은 위원장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정상회담 이후다. 극비리에 진행된 북-중 정상회담 내용을 파악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 트럼프 대통령의 특사로서 폼페이오 지명자는 김 위원장과의 면담을 통해 비핵화 의지를 직접 확인하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을 만난 한국 정부 특사단이나 중국을 통해 ‘비핵화 용의’를 전달받기는 했지만, 북-미 정상회담의 미국 내 정치적 동력을 확보하려면 이것만으로는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리는 폼페이오 지명자의 방북은 ‘특사 외교’를 통한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첫 ‘간접 대화’로 볼 수도 있다. 그 결과를 놓고 트럼프 대통령이 “순조로웠다”, “좋은 관계가 형성됐다”고 내세운 것은 김 위원장의 ‘의지’를 신뢰한다는 메시지로 이해된다.
앞서 미국 언론들은 고위 관리들을 인용해 김 위원장이 북-미 정상회담을 위해 한반도 비핵화를 논의할 준비가 됐음을 미국에 전달했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폼페이오 지명자의 방북을 전후해 북-미가 물밑에서 더욱 접근해온 것으로 볼 수 있다. 김 위원장이 지난 9일 노동당 정치국 회의에서 이례적으로 북-미 대화를 직접 언급한 것도 ‘대화 의지’를 다진 발언이다.
폼페이오 지명자는 방북 때 북한이 비핵화 조건으로 요구하는 ‘군사적 위협 해소 및 체제 안전 보장 방안’과 관련해서도 심도 있는 논의를 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북-미 정상회담 논의 상황에 밝은 복수의 워싱턴 소식통은 <한겨레>에 “최근 북-미 접촉에서 북한이 △미국 핵 전략자산 한국에서 철수 △한-미 연합훈련 때 핵 전략자산 전개 중지 △재래식 무기 및 핵무기로 공격하지 않는다는 보장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 △북한과 미국의 수교 등을 제시했다”고 밝힌 바 있다.
미국 쪽에서도 대체로 긍정적인 분위기가 감지된다. 폼페이오 지명자는 12일 상원 외교위원회 인준 청문회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북-미 정상) 회담을 통해 (단번에) 포괄적 합의에 이를 것이라고 환상을 가지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러한 합의문을 만들고 달성하기 위해 두 지도자가 수용할 수 있는 조건을 정할 수는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북한의 시간 벌기’를 막겠다며 제시하고 있는 1~2년 정도의 ‘비핵화 시한’에 북한이 동의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정상회담 장소 문제를 놓고도 양쪽은 여전히 신경전을 벌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 모두발언에서 북-미 최고위급 직접 대화 사실과 남북 간 종전 문제 논의 사실을 흘린 것도 흥미롭다. 일부에선 북-미 협상의 속도를 늦추고 싶어 하는 아베 총리에 대한 견제라는 분석도 있다. 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선 폼페이오 지명자가 ‘훌륭한 외교관’이라는 점을 부각해 상원 인준 통과를 돕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도 한다.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김지은 노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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