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건의 살인과 45건의 성폭행으로 미국 캘리포니아주를 공포에 떨게 만들고 42년이 지나서야 붙잡힌 제임스 드앤젤로(72)는 그동안 어떻게 법의 심판을 피할 수 있었고, 왜 이제서야 검거됐는지를 놓고도 관심을 끌고 있다. 그를 붙잡는 데 결정적 공헌을 한 것은 ‘족보 서비스’인 것으로 드러났다고 <로스앤젤레스 타임스>가 26일 보도했다.
캘리포니아주 새크라멘토 경찰과 연방수사국(FBI)은 1976년부터 10년간 그가 저지른 악마적 범죄 행위들을 애초 동일범의 소행으로 추정하지 않았다. 그러다 여러 범죄 현장에서 채취한 디엔에이(DNA)를 대조하고서는 같은 상습범의 소행이라는 판단을 하게 됐다.
하지만 디엔에이만을 가지고는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용의자 무리의 범위가 좁혀져야 디엔에이 대조를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때 여러 민간 업체들의 ‘족보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을 착안하게 됐다. 이는 디엔에이를 제출해 조상의 계보를 파악하거나 친인척을 찾는 데 이용하는 서비스다. 범인이 어느 업체에 디엔에이를 제출했다면 찾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꼭 범인이 아니더라도 염색체 분석을 통해 그와 가까운 남자 친척이 등록해놓은 게 있다면 추적 범위를 좁혀갈 수 있다고 봤다. 범인과 혈통적으로 가까운 사람일수록 추적에 도움이 되는 것이다.
수사 당국은 이런 분석법을 통해 몇몇 가계로 범위를 좁히고, 나이 등을 따져 용의자를 100여명으로 추릴 수 있었다. 이어서 비밀리에 용의자들의 디엔에이를 수집·분석해 마침내 전직 경찰관인 드앤젤로를 검거할 수 있었다. 드앤젤로가 버린 물건에서 디엔에이를 채취했다고 한다. 앞서 경찰은 드앤젤로의 검거 사실을 밝히며 “건초 더미에서 바늘을 찾았다”고 했다.
하지만 익명의 수사 당국 관계자를 인용해 검거 경위를 보도한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드앤젤로와 얼마나 가까운 친척이 디엔에이를 ‘족보 서비스’에 맡겼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족보 서비스’들은 고객의 생체 정보를 절대로 유출하지 않는다고 광고하고 있다. 이 신문은 여러 업체들에 문의했으나 ‘우리는 수사에 협조한 적이 없다’고 한다고 전했다. 디엔에이 증거를 이용해 그를 붙잡았다고 밝힌 수사 당국도 개인 생체 정보 유출 논란을 의식한 듯 공개적으로 검거 경위를 설명하지는 않고 있다.
이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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