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정상회담을 앞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 국방부에 주한미군 병력 감축 옵션을 준비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뉴욕 타임스>가 3일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뉴욕 타임스>는 이 소식통들이 주한미군의 감축 수준이 북-미 회담의 협상 카드가 될 의도는 없다고 밝히면서도, 남한과 북한의 평화협정이 현재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 2만8500명에 대한 필요성을 감소시킬 수 있음을 인정했다고 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경기도 평택 캠프 험프리 미8군 사령부 상황실에서 기념촬영을 마친 뒤 빈센트 브룩스 주한미군사령관 악수하고있다. 평택/사진공동취재단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미군이 수십년간 북한의 핵 위협을 막지 못한 데다, 주로 일본을 보호하고 있다는 점을 들면서 미국이 자국 군대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비용을 적절히 보상받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해 왔다.
<뉴욕 타임스>는 “2018년 말까지 한국은 미군 유지 비용의 절반을 지불하게끔 돼 있는데 이는 연간 8억달러(약 8614억4000만원) 이상”이라며 “트럼프 행정부는 이후 군대 유지 비용 전체를 한국이 지불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신문은 이번 지시가 한-미 동맹을 약화시키고, 미국이 북한과 핵 협상에 돌입하는 시점에서 이웃 일본에 우려를 증가시킬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미국 국방부와 다른 기관 관계자들이 난처한 상황에 처했다고 덧붙였다.
<뉴욕 타임스>는 관리들이 “전면 철수 가능성은 적다”고 밝히면서도 “주한미군의 규모와 배치를 재고하는 것은 북한과의 외교 상황과는 관계없이 이미 이뤄졌어야 할 것이었다”고 강조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뉴욕 타임스> 보도에 대해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핵심 관계자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고 말했다. 윤 수석은 “미국을 방문중인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조금 전 백악관 핵심 관계자와 통화한 뒤 이같이 전해왔다”고 밝혔다.
하지만 북-미 평화협정 등 한반도의 전략적 지형 재편 움직임을 앞두고 주한미군의 존재와 주둔 규모의 적절성, 성격을 둘러싼 논쟁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은 지난달 27일 마리우시 브와슈차크 폴란드 국방장관과 회동 직전 기자들과 만나 남북 평화협정이 체결된다면 주한미군 문제도 논의 의제로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그는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미군이 한반도에 주둔할 필요가 있느냐”는 질문을 받고 “아마도 그것은 먼저 동맹과의 협상에서, 물론 북한과의 협상에서도 우리가 논의할 이슈의 일부”라고 답했다.
<뉴욕 타임스>의 보도가 사실이라고 가정할 때,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미국 국방부가 마련할 ‘옵션’의 내용은 예측이 어렵다. 적대국들은 물론 동맹국들에 대해서도 ‘협상용’으로 군사·무역 분야에서 강경한 언급과 조처를 해온 점을 감안하면, 이번 지시가 실행 단계로 접어들지 않을 개연성도 상당해 보인다. 미국 외교·안보 관리들이나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주한미군의 존재를 한국 방어라는 시혜적 측면뿐 아니라 미국의 동북아시아에서의 주도적 역할을 뒷받침하는 존재로 보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남북 정상회담에 이어 북-미 정상회담을 앞둔 시점에 주한미군 감축 검토를 지시했다면, 우선 경제적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미국 우선주의’의 관점에서 주한미군 방위비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려는 포석일 가능성이 있다. 한-미는 연말까지 이어질 수 있는 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벌이고 있다. 한국은 주한미군 유지 비용을 절반을 대고 있는데, 미국은 그 인상을 요구한다. 지난달 협상에서는 북-미 대치 와중에 한반도에 전개한 전략무기들의 운용 비용을 대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또한 <뉴욕 타임스>와 인터뷰한 관리들은 부인했지만, 북한과의 담판을 앞두고 일종의 유화 제스처를 취한 것일 수도 있다. 주한미군의 존재는 한반도 문제의 주요 ‘당사자’인 중국의 큰 관심사이기도 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무역 문제 등 미국의 이익이 걸린 사안에서는 적대적 관계의 국가이든 동맹이든 가리지 않고 여러 수단을 동원해 압박하는 전술을 펴왔다. 중국을 중심으로 한국, 일본 등 대미 무역흑자를 보는 동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불만을 표시해왔다. 한국을 압박하는 수단의 하나로 미군 감축론을 꺼냈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한편 미국 국방부는 3일(현지시각) 남북 정상이 판문점 회담에서 평화체제 구축에 협력하기로 한 후 주한미군 철수론이 거론되는 것과 관련해 “우리의 입장과 임무는 동일하며 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데이나 화이트 미국 국방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향후 남북이 평화협정을 논의할 경우 주한미군 철수에 대한 미국의 입장을 묻는 말에 이같이 대답했다.
김미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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